[배성호 칼럼] 윗물도 아랫물도 모두 정화해야

승인2019.05.12l수정2019.05.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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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성호 본지 상무이사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사회보험 등 4대 사회보험료 고액·상습 체납자가 (2018년 12월 현재)884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고액·상습 체납자는 1000만 원 이상 2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 건강보험공단은 부동산과 예금채권 등 금융자산과 자동차 등을 압류하고, 압류재산은 공매해 적극적으로 체납 보험료를 환수할 계획이다.

 또 앞으로는 1000만 원 이상 1년(당초 2년) 이상 체납한 자에 대해 성명, 상호, 나이, 주소, 체납액의 종류·납부기한·금액·체납요지 등을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사전지급 제한 통지서를 받고도 보험료를 계속 납부하지 않으면 급여 제한 대상자 명단에 올리기로 했다.

 특히 4대 사회보험료 고액·상습체납자 중에는 기업인, 땅투기꾼, 사회지도층 인사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철저히 밝혀내 단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5월 10일 출범한 후 2년여 동안 사정반(?)을 가동해 두 전직 대통령 구속과 대대적인 적폐청산으로 사회 전체에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인, 사회지도급 인사, 재벌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은밀하게 내사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야말로 오뉴월의 사정 회오리바람이 음동의 서릿발 같이 매섭게 불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사정의 칼날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인·허가 부서나 이권부서의 공직자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무원이나 기업인이나 정치인 중에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배금사상에 오염되고 극단적인 이기심만으로 가득 찬 오늘의 사회구조는 ‘뇌물’이라는 먹이사슬로 얽매어져 있는 사회임을 느낄 수 있다.

 관료사회의 밑바닥에는 하위직 공무원과 서민들이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유유상종의 상층부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다만 상층부의 먹이는 치부의 수단이고, 밑바닥의 먹이는 생존권을 위한 재물(?)일 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처럼 우리 관료사회는 권력의 상층부나 권력기관으로부터 청탁이나 압력을 배겨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기에 하위직이나 고위층 누구도 최상층 권력자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관료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 근원을 제거하지 않는 한 공직사회가 맑아지리라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공직자들은 부정부패의 대명사처럼 매도되는 것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그들은 공직사회의 기강해이와 부패원인은 정치권의 불안정, 사회불안 등에서 기인되고 있다며 통치력의 무기력을 꼬집고 있다.

 우리나라는 6·25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 이제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맞아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누구나 잘사는 평등한 사회가 되기 위해 권력층과 재벌기업, 사회지도급 인사들의 뼈아픈 자기반성과 도덕성 회복이 하루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자신의 허물은 철저하게 베일 속에 감춰놓고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끝까지 단죄하려는 오늘의 우리들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양심이 있는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사정반(?)까지 가동시켜 부패공직자를 숙청해야 하는 오늘의 시대상황은 성서(聖書)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자는 돌멩이로 쳐 죽여라’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예수는 모든 죄인에게 사랑으로 용서하도록 계명을 선포했기에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하면 ‘사랑’이란 그의 계명에 어긋나고, 돌로 치지 말라고 하면 ‘율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한 예수는 땅에다 십계명을 쓴 다음 ‘여기 모인 사람가운데 죄없는 자가 있으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고 말했다.

 간음한 여인을 죽여야 한다고 아우성치던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십계명을 보고는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광장에는 예수와 간음한 여인 등 두 사람만 남게 됐다.

 모두가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양심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한 것이다.

 결론해 최하층에서 고위층까지 모두가 양심에 손을 얹고 한번쯤 자기 자신을 깊이 반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배성호기자  baesh@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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