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성계(空城計)

  • 입력 2019.06.16 13:20
  • 수정 2019.06.16 17:32
  • 기자명 /노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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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종욱 기자
▲ 노종욱 기자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에는 텅빈 성(城)에 속아 넘어간 조조(曹操) 휘하의 한 장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제갈량은 양평이라는 곳에 군대를 주둔시켜 두고, 대장군 위연(魏延) 등을 파견해 조조의 군대를 공격케 했다. 때문에 성 안에는 병들고 약한 소수의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이 때 조조의 군대가 대도독 사마의(司馬懿)의 통솔로 양평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 졌다. 성을 지키고 있던 유비의 군사들은 이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과감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는 군사들을 시켜 성문을 활짝 열고, 성문 입구와 길을 청소해 사마의를 영접하는 것처럼 꾸몄다. 그리고 자신은 누대(樓臺)에 올라가 조용히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사마의는 군사를 이끌고 성 앞에 당도해 이러한 상황을 보고 의심이 들었다. 

 그는 성 안에 이미 복병이 두고 자신을 유인하려는 제갈량의 속임수라고 생각하고, 곧 군사를 돌려 퇴각했다. 공성계(空城計)란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지만 사실은 준비가 전혀 없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올해 진행된 산청군행정사무감사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의 공성계(空城計)를 연상시켜 참으로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어쩌면 행정사무감사라는 것은 지난 1년간의 살림살이에 대해 잘한 것은 칭찬을 하고 조금 모자랐던 부분은 서로가 고민하고 상의해서 보다 나은 군민의 삶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중요한자리가 피감기관인 의회의 준비부족으로 졸속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또한 집행부와 행정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생각도 드는 것은 왜일까? 물론 사람마다의 시각과 사고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이번 산청군행정사무감사를 두고 참으로 화기애애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잘 마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기자의 눈에는 그렇게까지 조화로운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행정사무감사 준비 기간 동안 의회는 행정에다 항상 많은 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행정에서는 퇴근도 늦추고 자료준비를 위해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수많은 시간의 노력에 비해 10분도 되지 않은 감사시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물론 행정의 입장에서는 사무 감사의 허술함에 다행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각 기관마다의 본연의 임무와 역할은 있는 것이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국민들과 주민들은 외면하는 것이다. 그 단순한 진리를 모른다. 그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요즘 국민청원을 통해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의 세비를 주지 말고, 일하지 않는 국회에 대한 주민소환 제도 마련 청원을 보면서 ‘산청군의회에도 적용시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일하지 않는 산청군의회, 그러면서 의정비는 꼬박 꼬박 받아 가는 산청군의회, 주민의 대표로 건전하고 건강한 행정의 감시와 대안 제시는 간데없고 그저 시간 때우기만 가득한 산청군의회.

 일부 다선 의원들의 냉철함과 노련함도 엿볼 수 있었지만, 이번 산청군행정사무감사는 공성계(空城計)에 지나지 않았다. 군 의회 대표적 저격수는 재갈을 물리고 또 다른 저격수는 병중으로 감사에 참여하지도 못했고, 1년에 한번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의원들의 행정에 대한 감시와 이해도를 평가는 자리임에도 전체적인 모습은 ‘아니올시다’이다.

 국민의 대표이지만 대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회나, 주민의 대표이지만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군 의회나 닮은꼴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민의(民意)를 대변해야 하는 자리가 모든 것들에 군림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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