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호 칼럼] 한·일청구권 어떻게 생각합니까?

승인2019.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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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성호 본지 상무이사

 지난 3일 아베 일본 총리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상호 청구권을 포기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는 우대조치를 취할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들을 철회해야 한다는 일본 내 대부분의 언론 비판에 대해 철퇴를 가한 동시에 한국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이번 전쟁은 과학·기술 등 교역분야의 간접적인 소프트웨어 침략이다.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소재의 한국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전략물자 수출절차를 간소화하는 대상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그것도 모자라면 자동차·화학분야의 제재요소를 찾을수 있고, 금융계통의 보복카드도 꺼내들수 있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일청구권에 대한 지난 50여 년의 지나간 일들을 한번 돌이켜 보자.

 1961년, 5·16 혁명정부는 잘사는 국가건설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텅 빈 국고를 채울수 없어 어떤 경제정책도 추진할수 없는 현실에 부딪혀 박정희 대통령은 고심끝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대일 청구권’과 ‘월남 파병’으로 알려지고 있다.

 혁명 6개월후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길에 잠시 일본에 들러 한일국교정성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일본의 동의를 이끌어 냈다.

 1962년 11월,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일본 오히라 외무상의 두번째 만남에서 합의한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메모’는 훗날 한·일 기본조약의 근거로 작용하게 됐다. 1964년 3월, 정부가 마침내 ‘한·일 외교 정상화 방침’을 발표하자 전 국민의 반대시위로 연일 격화일로로 치닫자 박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선포라는 초강수를 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1965년 6월22일 혁명정부는 갖은 난관속에서도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국교정상화의 길을 열었다.

 청구권 관련 사항은 무상공여 3억불과 차관명목 3억불을 일본이 제공하는 대신 한국은 식민지 피해에 대한 배상문제를 일체 포기키로 약속했다.

 이렇듯 쌍방간의 종결된 사안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봉합되지 못하고 왜 자꾸만 재발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우리정부가 지금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한 탓으로 여겨진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은 당시 시급사업인 고속도로와 포철건설 등에 우선 투자하다보니 정작 피해 당사자를 위한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누구의 잘못으로 봐야 옳은가.

 필자의 생각은 이젠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 일제와 관련된 창피(?)하고, 말 못 할 수치심과 서글픔이 함께 밀려오는 지난 일들은 깊이 묻어두고 싶다. 일본의 통치를 받은 지난 수십년은 우리에게 고통과 치욕의 세월이었지 자손들에게 말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한일국교가 정상화된지도 어언 반세기를 넘었다.

 피해자나 유족들이 원한다면 국가가 직접 일본과 협상에 나서 보상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일제침략을 당한 무능하고 허약한 국가로서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엉뚱한 곳에 국고를 낭비하지 말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문제를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해결하길 간곡히 바란다.

 지난 1948년 대한민국 수립후 한·일 양국간에는 수십차례에 걸쳐 양국 정상(頂上)들이 공식, 비공식 방문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문이 ‘과거의 멍에’에 구속당해 첨예한 정치적 쟁점으로 성숙된 우호분위기 속에서 가슴을 연 진정한 대화는 없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일본은 “김종필 전 총리를 통해 보상을 다해줬다”고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이냐?”며 대화자체를 묵살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도대체 외교당국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사실 그동안 한·일간은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문화 등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양국간의 마찰을 줄이고 상호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으나,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창시절 유태인의 삶의 지혜 중 첫번째가 ‘다툼없이 사는 것’으로 배웠기에,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멀고도 가까운 나라’로 불리는 한·일 두나라는 지금까지 풀지못한 문제들을 하루속히 해결함으로써 이제는 명실상부한 ‘가깝고도 진정한 이웃’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본은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순식간에 날려보냈지만 미국을 영원히 잊지못할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지 않고, 종전후에는 수많은 산업전사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 그들의 선진기술을 배우게 하는 등 얻을 것은 얻고, 따질 것은 외교라인을 통해 주장하는 등 실리외교를 펼쳤다는데…

 

/경남연합일보  abz3800@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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