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김주석 선생 독립운동 재조명

김주석 선생 항일독립운동 서훈 1주년 포럼 개최
유작품 보존과 ‘기념사업회 발전’ 등 토론 이어져
승인2019.08.15l수정2019.08.1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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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는 지난 14일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3·15 아트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유족 및 지역 예술인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항일독립운동 서훈 1주년 포럼을 개최했다고 15일 밝혔다.

 창원시(시장 허성무)는 괴암 김주석 기념사업회(이사장 전보경)가 지난 14일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3·15 아트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유족 및 지역 예술인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항일독립운동 서훈 1주년 포럼을 개최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포럼은 항일독립운동 서훈 1주년을 맞아 김주석 선생의 고귀하고 희생적인 삶과 광복의 중요성 및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유작품의 보존과 기념사업회의 발전 방향 등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졌다.

 최근 급속도로 냉각된 한일관계를 김주석 선생의 독립운동과 문화예술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좋은 시간이 됐다.

 김주석 선생은 10대 후반 경성전기학교(현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항일단체인 ‘학우동인회’를 결성했다.

 일본 총독 암살 계획을 하던 중 서울헌병대에서 2주간 고문당하고 진해헌병대로 압송,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며 사상범들에게 행해진 고문 등 악행을 그림과 기록으로 남겼다. 

 학우동우회는 8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단체로 진해출신 학생이 4명이었다. ‘징병제도 반대’, ‘일어사용 반대’, ‘우리말 사용과 계몽’, ‘민족차별 반대’, ‘창씨개명 반대’, ‘위안부 동원 반대’ 등 혈서로 공약을 맹세하고 활동한 결사대였다.

 김주석 선생은 해방 후 진해입성자교학원에서 강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0대 후반 겪었던 고문으로 인해 손발저림, 피부병, 심장병 등 평생 고통에 시달리다 1983년 한쪽 다리의 통증으로 보행이 어려워졌다. 학교 퇴직 후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에 의존하고 하반신 장애인으로 살다가 66세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전보경 이사장은 “김주석 선생의 항일운동 자취와 고귀한 독립운동 정신이 깃들어 있는 유작품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허성무 시장은 “이번 포럼을 통해 많은 시민들이 괴암 김주석 선생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병용기자  moon@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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