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소리] 뛰어난 작전지휘, 반격의 기반을 마련하다

  • 입력 2019.10.22 17:55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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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화살머리고지에서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를 하다 전사하신 유해를 발굴 및 신원 감식해 66년 만에 아들의 품으로 귀환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가 경남 거제에서 있었다.

 아버지의 유품을 받은 그의 아들은 벌써 70세의 노인이 돼있었고, 참았던 그는 울음을 터트리며 오열했다.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쳤던 우리 국군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의 자유는 없었을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매달 6·25전쟁 영웅을 선정해 다양한 방법으로 알리는 업무를 하고 있다.

 2019년 10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이성가’ 육군 소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성가 장군은 1922년 만주에서 출생했고,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임관해 1949년 10월 태백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 제5사단은 양양과 강릉을 잇는 해안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국군 제8사단을 공격했다. 당시 제8사단장이었던 이성가 소장은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며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켜 미 지상군이 서부전선에서 저지선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획득하게 했다. 

 그 후 풍기, 안동, 의성 전투에서 지연전을 효과적으로 했으며, 특히 영천전투에서 뛰어난 작전지휘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반격작전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지리적으로 영천은 대구와 포항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로서 북한군이 점령할 경우, 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붕괴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전투에서 이성가 소장은 북한군 제15사단을 역습해 빼앗긴 영천을 탈환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후에도 이성가 소장은 1951년 제7사단을 지휘해 전술적 요충지인 백석산 및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등 많은 전투에서 작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휴전 후에는 5군단장,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장을 역임한 후 1962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했다. 그 이후 멕시코, 오스트리아 대사를 역임했으며, 1975년 3월 향년 53세로 별세했다. 

 탁월한 지휘력과 용맹성을 발휘 한 그는 태극무공훈장을 비롯해 을지무공훈장 2회, 충무무공훈장 3회, 화랑무공훈장 등 다수를 받았으며 그의 초상화는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국민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국민들은 우리 조국을 위해 희생·헌신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그분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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