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성 법률칼럼] 이혼에도 자격이 있나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 입력 2019.12.02 14:58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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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공개 불륜’으로 논란을 빚은 유명 영화감독 A 씨가 부인을 상대로 제기한 이혼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혼 절차에 돌입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서울가정법원은 A감독이 혼인관계의 의무를 위반한 유책 배우자이기 때문에 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기각 판결을 내렸다. 

 즉, ‘유책주의’에 입각해 A 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유책주의’는 재판상 이혼에 관한 입법주의이다. 이는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는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는 법리적 견해를 말하며, 한국은 이 유책주의를 50년 동안 유지해 온 나라다. 

 우리나라 판례가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한, 외도 등을 저질러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는 이혼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파탄주의’가 있다. 파탄주의를 영어로 ‘노폴트 이혼(No-fault divorce)’이라고 하는데, 부부가 공동생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면 책임 여부와 관계없이 이혼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법이 파탄주의를 전면으로 배척하는 건 아니다. 상대 배우자도 이혼하겠다고 하거나 파탄을 낸 쪽이 배우자와 자녀를 충분히 배려했을 경우 등 예외적인 경우에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다. 

 상대 배우자가 실제로는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전혀 없으면서 오기나 보복적인 감정에서 표면상으로만 이혼을 거부하고 있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외 사유이다.

 또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배우자·자녀에게 배려가 이뤄진 경우, 세월이 너무 경과해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게 됐을 경우도 예외 사유에 해당된다.

 이혼 판결에 있어 유책주의를 택할 것인지 파탄주의를 택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꽤 오랜 기간 진행되어 왔다. 유채주의를 취하면 혼인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더라도 이혼하지 못하고 혼인관계를 지속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파탄주의를 취하면 유책배우자가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결혼 관계에서 배제시키기 위한 방책으로 악용할 소지가 높다는 문제점이 있다. 

 2015년 9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유책주의 원칙을 바꾸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취지로 내연녀와 혼외자를 둔 한 남성이 자신의 아내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아직 파탄주의 채택 이후 자녀 양육이나 이혼 배우자의 경제적 문제 등 법적, 제도적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실상 OECD에 가입한 선진국들 중에서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미국의 모든 주, 독일, 프랑스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 또한 30년 전부터 파탄주의를 인정하고 있다. 

 법이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낮았던 과거의 경우 ‘축출이혼 방지’를 위해 유책주의를 취하는 것이 옳았겠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이혼 후 부양제도와 같이 상대방 배우자를 보호해줄 만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통해 파탄주의 요소를 수렴하여 실질적으로 파탄된 혼인관계를 형식적으로 지속, 강제하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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