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흥남철수작전을 회고하며

  • 입력 2019.12.22 14:09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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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에 패퇴를 거듭하던 한국군과 미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기점으로 9월 28일 서울 탈환, 10월 19일 평양 점령 등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으나 10월 25일 26만 명의 중국인민지원군 투입으로 병력의 열세와 강추위를 극복하지 못한 미군과 한국군은 결국 12월 이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10만 명에 이르는 미군과 한국군은 흥남에서 집결해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열흘에 걸쳐 193척의 선박을 타고 철수했는데 당시 자유를 찾아 흥남부두로 모여든 피난민 10만 명도 함께 38선 이남 지역으로 내려왔다. 

 당시 미국 제10군단장이었던 알몬드 소장은 600만 t의 무기와 장비를 수송해야 한다며 피난민 수송을 반대했다.

 많은 무기와 장비들을 적군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으나 민사부 고문을 맡고 있던 현봉학 선생의 설득으로 피난민들은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오게 된 것이다.

 피난민을 나두고 가면 중공군에게 몰살을 당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 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군수물자 보다 10만 명의 인명이 더욱 소중했기에 미군도 결국 피난민을 수송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내년이면 6·25전쟁이 일어난지 70주년이 된다. 70년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극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계경제 10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많은 6·25참전유공자,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도우러 온 UN군 그리고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반도는 북한과 대한민국이 휴전상태로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한곳이다.

 그러나 현세대들은 당시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잘 인식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점점 전쟁에 대한 참혹함을 잊어가는 듯 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다.

 필자는 국립산청호국원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6·25전쟁에 참전한 어르신들의 생생한 증언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분들의 희생이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가 어찌 이렇게 평화롭고 풍족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국민들이 6·25전쟁에 대해 정확한 역사의식을 가져야 되고 숭고한 희생을 하신 국가유공자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다시는 동족상간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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