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마당] 스승의 날 유감(有感)

  • 입력 2006.05.17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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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대중탕에 들어선 나는 어린이들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였다. 분명 월요일인데…, 한참 생각하고 나서야 5월 15일 스승의 날임을 알게 되었다.

스승의 날에 쉬는 학교가 70%를 넘는다고 하는 기사를 본 것 같다. 스승! 스승의 날! 미워할 대상도 아니고 기피할 날은 분명 아닌데 왜 이 날에 교문을 닫아야 하고 선생님과 학생이 없는 빈 자리에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라는 축하 현수막만 걸려야 하는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충청남도의 한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전·현직 선생님들을 위로하는 날로 시작된 스승 섬기는 날이 ‘은사의 날’로 되었다가 1982년 정부에서 ‘스승의 날’로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이 날이 처음에는 순수한 사은(師恩)을 기리던 날이었는데 오늘은 어린이와 배면하고 교문을 닫고 내 집에서 교직을 되씹는 서글픈 스승의 날이 되었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가 어릴 적 스승에 감사하는 행사를 처음 본 것은 학교 입학 전이었다. 고향 서당에서 천자문을 다 배운 어린이의 부모가 메밀묵과 떡을 가져와 훈장 앞에 놓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책례(冊禮)였다. 책례란 소위 ‘책씻이’로 한 단계의 과정을 마친 것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스승과 동료 학동에게 한턱내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80년 전의 우리 농촌은 어려웠다. 그래도 자식 공부라도 시켜보려고 서당에 아이를 보낸 어버이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이 하는 흉내는 내야 한다고 책씻이를 빠뜨리지 않았다.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존경이요, 같이 배우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를 함께 담은 음식 공여였다.

내가 교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에 순수해야 할 촌지(寸志)에 좋지 않은 냄새가 풍겨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는 사람이 나쁘냐’ ‘받는 사람이 나쁘냐’ 시비를 따지기에는 너무 문제가 커져 버렸다. 줄 수 있는 사람과 주고 싶어도 줄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의 틈이 자꾸만 커지고 교단에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여 언론사의 한 여론조사에서도 주어도 좋다는 의견이 반수 가깝게 나타나는가 하면 촌지를 받는 교사를 벌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66%를 넘는다고 하였으니 촌지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상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재화를 보면 흔들리는 것이 정상이다. 주는 촌지를 뿌리쳐야 할 용기를 갖는 일이 선생님의 처지에서도 참으로 어렵다고 본다. 또한 어버이의 처지에서 학생들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에 지원이라도 해 보겠다고 남들의 눈을 피해 가며 촌지를 보내야 하는 마음도 딱하기만 하다.

이 기회에 학교에 있어서의 학생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다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학생은 학교에서 목적적 존재일 뿐 수단과 방편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학생관을 스승의 날에 꼭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하고 권하고 싶다. 교사가 학생을 방편으로 이(利)를 구하지 말고 부형이 촌지로 선생님의 환심을 사는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학생 개개인은 사명감에 찬 선생님들의 교육력으로 각자의 소질 개발을 통해 걸맞은 열매를 얻는 길이 열릴 것으로 믿는다.

학교는 해마다 새 얼굴이 들어오고 배움의 자리는 바뀌어도 언제나 활력이 넘치는 순수한 배움의 터다.

촌지로 하여 교육이 폄하되고 선생님의 권위와 사기가 저하되는 현실에서 촌지의 폐해 원인을 제공하는 측이 누구이든 교육을 살린다는 결단으로 대오각성하여 지금부터라도 투명한 학교환경을 만드는데 앞장서 협조하고 할 일 많은 국회의원들이 ‘학교촌지근절법’까지 만들어 일률적으로 교사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학교교육을 옭아매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촌지를 모르고 평생을 교단에 몸바치고 있는 훌륭한 선생님들께 낯 뜨거운 말들이 울분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승의 날에 문닫는 일이 없는 학교를 보고 싶다. 이 땅에는 촌지를 모르고 평생 봉사하는 수많은 선생님이 교단을 지키고 있는 현실을 사회에서, 언론에서, 행정당국에서 유의하고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공우열/前경남삼락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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