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극성은 이제 촌스럽다

  • 입력 2006.05.17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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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가장 극성스러운 민족들이 모여 무슨 대회를 치렀다한들 우릴 따라올 만한 족속들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외국 문화도 한국에만 오면 극성을 떨게 마련이다. 우선 종교를 보아도 조선시대엔 유교의 극성이 본고장 중국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엄격해 되레 중국이 한 수 배워가야 할 판이었다. 기독교는 어떻고 불교는 또 어떤가. 최소한 아시아권에서 한국처럼 기독교가 흥한 나라는 찾아 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본고장 서양 기독교세(勢)도 우리 기독교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지경이다. 음식도 세계에서 가장 맵게 먹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마늘이나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안할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한국 축구의 희망, 아드보카트 감독이 최근 펴낸 수필집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를 보면 매운 떡볶이를 깨문 순간 비명과 함께 “내 입술이 타들어간다”고 실토하고 있다. 뜨거운 해장국을 떠먹으면서도 연신 ‘어, 시원타’를 연발하는 민족이다.

술판이 벌어져도 끝장이 나기 전에 파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폭탄주까지 조제해 몇이 꼬꾸라질 때까지 마셔댄다. 놀기도 끝내 주지만 밤일도 마다하지 않는 민족이라 경제 성장률도 가히 세계적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IT강국으로 도약하는 한 요인이 됐을 정도로 극성스런 민족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딱 한가지, 극성스런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을 과연 교사들이 막아 낼 수 있겠느냐는 걱정엔 속수무책이다. 급기야 엊그제 스승의 날에 학교가 문을 닫는 촌극이 벌이지고 말았다. 집집마다 애들 한 두명씩 낳고선 자기 아이에게 특별히 신경쓰게 해주십사고 선생님들을 찾아 극성을 떠니 일선 교사도 학교 당국도 차라리 문을 닫자고 한 모양이다.

이럴 바에야 차제에 ‘스승의 날’을 없애 버리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극성스러운 민족이 스스로의 극성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다. 한 마디로 남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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