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훈복지 현장에서 어느 섬김이의 바람

  • 입력 2020.03.04 15:02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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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난 12여 년 동안 경남동부보훈지청에서 근무하며 고령·독거 유공자 어르신들을 돌보는 ‘보훈섬김이’다. 오늘 난 그런 보비스(Bovis, 보훈복지사업)와의 인연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분 있어 그 경험과 소회를 적어 본다.

 경남김해시에 거주하시는 ‘나동길(만 75세, 재해부상군경 7급)’ 국가유공자 어르신이다. 그 분 때문에 나는 이 곳 저 곳을 정말 많이 뛰어다녔다. 돌보는 과정에 때론 서운해서 혼자 많이 울기도 했다. 반면 보훈섬김이로서 더 큰 보람을 내게 안겨 주신 분이다. 

 혼자 살고 계시는 댁을 첫 방문하던 날이었다. 그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안에 깔려진 바닥 장판이었다. 방과 거실 바닥에 얼마나 걸레질을 해 댔기에 장판 무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상태였다. 

 내게 청결함으로 그런 강렬한 첫인상을 주신 어르신은 1972년도 군생활 중 청력상실의 부상을 입었고 배우자와 자식도 없이 오로지 절실한 친구 한 사람만 오가는 지극한 외로움을 겪으면서 자기만의 울타리에 갇혀 사시는 전형적인 청각장애 후유증을 앓고 계셨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결벽증 외에도 누군가가 항상 자신을 공격하고 죽이려 한다는 피해망상증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이 세상 어는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해 모든 일을 본인이 직접 챙겨야 했고 빨간 색깔만 봐도 갑작스레 불안증에 휩싸여 도망치듯 피해 다녔다.

 일주일에 두세 번 방문하면서 어르신께서 원하시는 일은 거의 다 들어 드리고자 애썼다. 인근 지자체 복지관에 연락해서 행동감지센서와 화재경보기, 119응급전화를 설치해서 어르신의 응급상황에 제때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가 방문하지 못하는 날에는 지자체 복지담당자에게 수시로 연락해서 어르신 건강상태를 확인했다. 그런 과정속에 그 분은 내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가끔씩 고맙다는 적극적인 감정 표현까지 해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월셋방 집주인과의 불화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기력이 없고 너무 피곤해 하셔서 인근 병원을 찾아 가게 됐다. 하늘도 무심하게 혈혈단신 기댈 곳 없는 어르신에게 악성 폐암 진단이 나왔다.

 그 이후 곧장 암 치료를 위한 병원에 입원해서 여러 차례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게 했다. 치료 과정을 매우 힘들어 하면서도 본래의 피해망상증이 더욱 심해진 듯 했다. 그러더니 이젠 담당 보훈섬김이인 나마저도 의심하고 가끔 인신 공격성을 보이며 불같은 화를 쏟아 부었기에 내겐 힘든 날들이 더 늘어났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말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보다 못해 관할 보건소와 동사무소를 드나들며 어르신의 현재 상황을 소상히 설명한 끝에 그곳 관계자의 도움으로 겨우 인근 요양병원으로 입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도 잠시, 처음엔 조용히 잘 적응하시는 듯 보였지만 이내 피해망상 증세가 솟구쳐 병원측에서 제공하는 음식과 일체의 약물치료를 거부하시다가 결국엔 지난 2020년 1월 말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나셨다. 

 살아 계시는 동안 아무도 찾지 않아 이 세상 단 하나의 친구만을 뒤로 한 채 모든 흔적을 날려 버렸다. 그 어르신 마지막 순간을 지켜 드리고 그 쓸쓸한 외로움을 달래 드리며 이 세상 배웅을 해드릴 수 있어서 그나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12여 년 동안 내가 섬겨 왔던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의 삶과 나의 역할에 대해 돌이켜 봤다.

 우리 주변에는 삶의 기본적인 복지혜택을 제때 받지 못하는 분들이 참 많았다. 최대한의 복지를 위해 선택과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되 직면한 상황과 장애특성에 맞춰 서비스 제공해야 한다. 쉬이 접할 수 없는 생활정보를 알려 드리고 특히 듣고 보지 못하는 문맹자와 같은 복지 수요자들을 위해 각급 기관에서는 공공복지 제도를 넓혀야 하겠다. 기본적 복지제도 알림기능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필요하다면 그 기능 제공을 의무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현장에서 직접 활동지원하고 있는 국가유공자 어르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의 신체·정신적인 장애를 안고 있는 모든 어르신들에게 보다 성숙한 공공복지가 전달되는 그날을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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