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웅 칼럼] 마음의 철조망

  • 입력 2020.03.16 14:24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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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말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성 속에서 규범에 따라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은 모두가 흩어져야 살 수 있다는 기막힌 삶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태리 정부는 지난 3월 4일 0시를 기해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를 반드시 1m 이상 떨어지도록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두 사람이 같이 있다 해도 1m 이상 떨어져서 대화하도록 강제규정을 발동하고 있다.

 지금 모든 국가의 상황은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전염된다는 구실로 대부분의 집회나 공식행사 등은 모두 취소되거나 무기 연기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15일 기준 8162명의 환자와 75명이 숨진 상태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머지않아 ‘코로나19’가 종식될 것이라는 ‘헛소리’를 하는가 하면 방문 열고 모기 잡는 것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장관이란 사람의 ‘태연하게 겨울에는 모기가 없어 문제없다’는 철면피 같은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끼는 것보다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위기감도 책임감도 없는 주제에 장관이란 감투나 쓰고 헛소리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에는 멍청한 코미디가 많기는 많은 모양이다.

 또 대학교수 출신 어느 도 교육감이란 사람은 뭐가 무서워서 마스크를 쓰냐고 큰 소리 쳐놓고 뒤꽁무니에서는 마스크를 쓴 채 업무를 보는 그 가증스런 이중성을 보는 순간, 인간의 심성이 어쩌면 이렇게 타락해 가는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적어도 대학교수까지 지낸 사람이 이중적 모습을 보는 것은 분노에 앞서 측은한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6일에는 정와대 정책실장이란 사람이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처음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외출했다 돌아와서는 손을 3분 이상 씻으라고 윽박질러놓고는 이제와서 마스크 공급대란이 벌어지니까 제 편한대로 말하고 있는 정부책임자의 말에 신뢰가 모두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정말 인내심도 강하고 자비를 베푸는 데는 그 어느 민족보다 강한 것은 분명하다.

 지난 3일 미국 ABC 방송기자가 대구 지역을 취재한 칼럼에서 ‘이곳에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다. 다만 절제와 고요함만 있다는 것은 새로운 국가 질서를 보는 것 같다’고 보도 한 적이 있다.

 기자는 진실을 역사에 기록하는 사람이다. 대구의 성숙한 모습을 역사에 기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인 500여 명은 하나가 돼 환자를 돌보는데 누구하나 불평이나 불만도 없이 하루 8시간의 공식 근무시간을 넘어 12시간씩 일을 찾아 솔선수범하는 간호사들의 눈물겨운 인간애가 대구를 감싸고 있는 현장을 외신기자들은 똑똑히 봤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기에 직면한 국민의 자긍심인 동시에 주체적 자주성의 기본인 것이다.

 더욱이 대구의 어느 모텔 주인은 장사보다 의료인들이 좀 더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모텔 전체를 통째로 내주고 주인 부부는 아들집에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난달 29일에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심리상태를 조사한 결과 59.5%가 불안과 노이로제 증상을 보였다는 사림을 밝히고 현재 우리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가 안정적이지 못한 것을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코로나19’ 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할 경우에는 마음의 고통을 예방하는 이른바 ‘심리방역: 마음방역’이 중요하다면서 지역 감염이 현실화될 때 과도한 불안이나 공포감을 갖게 되는 것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테면 마스크 공급 대란이 일어나면서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이 헛소리나 하고 있어 믿음이나 신뢰를 주지 못할 때 불안과 공포감은 더욱 높아지면서 끝내 분노가 온몸에 번져 모든 사회질서를 부정하는 일까지 번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바깥출입도 자주 못하고 있으면서도 이웃 간에도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긍정적인 활동을 외면한 채 ‘마음의 철조망’을 겹겹이 치고 있는 것이다.

 186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 농장 울타리 재료로서 철조망을 처음 사용했는데 20년이 지난 뒤 호주의 미술사학자(美術史學者)인 앤런 크렐(Alan Krell)은 인류가 발명한 수많은 경계물 가운데 ‘철조망’이 최고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우리 주변은 코로나 전염병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효율적 지배도구인 철조망을 치고 있는 느낌이다. 

 도시나 농촌이나할 것 없이 소리 없는 삶을 연장하는 것은 불안과 공포감을 예견되는 바람에 사람만나는 것을 기피하면서 마음의 장병을 치고 있는 것이다.

 오도가도 못하게 집에만 있으라고 하는 바람이 모든 고통이 ‘나만’ 겪는다는 과도한 심리상태 때문에 매일 불안과 공포 속에 있어 마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서울 ‘코로나19’ 심리지원단장인 심리학교수는 타의적 규제에 의한 것이지만 소란스러운 삶의 현장을 좀 더 벗어나 새로운 자아발견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음의 뱡역’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지속된 대화와 이웃 간의 결정적 소중함을 서로가 인식하고 그 분위기를 공유할 때만 ‘차가운 마음의 철조망’이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근원적 삶의 지표인 동시에 ‘르상티망(Ressentiment)’의 마음을 이기는 인간의 원초적 표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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