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웅 칼럼] 무엇이 변해야 산다는 것인가

  • 입력 2020.04.16 16:24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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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한다는 것은 속일 수 없는 진리다. 온 삼라만상이 가만히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도 변하고, 나무도 변하고, 파도도 변하고 그리고 시간도 변한다. 무엇하나 변(變)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해야 산다고 야단이다.

 얼마나 변해야 살 수 있다는 것이며 어떻게 변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인가.

 미국의 경제학자인 조지 싱(G. Sing) 교수는 그의 책 ‘동기의 기적(The Miracle of Motivation)’에서 자기 생활의 영역 속에서 성공할 수 있는 ‘동기의 기적’을 찾아내야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사물이 조금도 쉼 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변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처럼 변한다는 것은 결국 자리바꿈의 한 형태다.

 어떤 물건을 좌우, 상하로 움직인다든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행위 같은 것을 멈춰버린다는 것이 소박한 변화의 순간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도 변해야 산다고 모두가 아우성이다. 더욱이 4차 산업 혁명시대에다 5G세대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변하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야단이다.

 어떻게 변해야 공통의 구성원들이 동의(同意)할 수 있다는 것인가. 코로나19 창궐로 집안에 가만히 있다 보면 모두가 변해야 산다고 야단이지만 막상 어떻게 변해야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지 난감할 때가 있다.

 사람은 숙명적으로 늙어가면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변해가고 있다.

 다만 이 변화의 과정을 실증적으로 인식하는 척도만 느릴 뿐이지 언제나 변하고 있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사회변혁의 과정에서 새로운 ‘취향’을 찾아내고 결코 가보지 못한 지역으로 나아가려는 실행의지가 없다면 변화의 동기와 힘이 생길 수 없다는 것과 무엇보다 위험한 존재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 없다면 결코 핵심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싱 교수의 주장이다.

 더욱이 싱 교수는 “변화하지 않으려는 자는 죽은 자 이며, 성공하려하지 않는 자도 죽은 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변화하려는 의욕이 없다는 창조적인 미래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인데,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환경을 갈망하면서 새로운 취향을 갖기 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변화의 힘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회적 거리’를 두고 사람과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변화를 실현한다는 것은 매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잘도 피하고 또 성실하게 추진해가는 역동성을 보이고 있으나 ‘나’는 왜 저들의 변화된 역사적 원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자학적 비관주의로 살 수는 없다. 무엇보다 변화에 따른 소박한 합리성을 가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가질 수 없는데서 갈등과 자기부정이란 취향을 갖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2보=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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