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게릴라전은 나에게 맡겨라!” 권영도 경위

  • 입력 2020.05.21 15:48
  • 수정 2020.05.21 15:49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권영도 경위.
▲ 권영도 경위.


<국립산청호국원, 6·25전쟁 70주년 계기 호국영웅 알리기 시리즈>
“게릴라전은 나에게 맡겨라!” 권영도 경위

 

 6·25전쟁은 한반도를 조선시대 이후 남과 북을 반으로 갈라놓은 계기가 된 전쟁이다. 각 세대마다 6·25전쟁에 대해 아픔과 생각의 깊이 차이로 공감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을 있게 한 6·25와 같은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같을 것이다.

 6·25전쟁 70주년을 계기해 6·25전쟁 호국영웅을 알리는 시리즈 기고를 기획한 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공헌한 인물들이 잊히지 않을 기회를 마련해 국민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함이었다.

 게릴라전은 전쟁 중 흔히 있는 전술의 한 가지 방법이다. 6·25전쟁에서도 게릴라전은 예측불허 한 상황을 전개하거나 적의 혀를 찌르고 전장상황을 교란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더욱이나 게릴라전에 임하는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극도의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사람만이 게릴라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러한 전장의 극한 공포 속에서도 투지와 용맹함을 잃지 않고 게릴라전에 탁월한 공적을 남긴 사람이 있다. 호국영웅 ‘권영도 경위’, 그는 1926년 7월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나 1941년 금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을 한 후 금서면사무소 직원으로 근무를 했다. 

 그러던 중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여 지역 향토방위대원으로 공비토벌작전에 11회 공비 소탕에 혁혁한 공을 세워 전투경찰 경찰 후보생으로 근무를 하다가 정식 순경으로 임용됐다. 

 특히 앞선 ‘시리즈 1탄’의 강삼수 경위의 부하로 근무를 하며 관내 국수봉 전투에서 적 게릴라 150명과 접전 중 23명의 적을 사살하고 다수의 장비를 노획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이어 산청군과 함양군 일대에서 적 게릴라 20명을 사살하고 13명을 생포했으며 1952년 6월까지 지역 내 게릴라 소탕작전 시 항상 선봉에서 활약했다.

 1952년 7월 산청군 웅석봉 일대의 게릴라 소탕을 위해 권영도 경위는 5명의 특공대를 조직해 적의 요새를 공격 섬멸하고 26세의 나이로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에 정부는 6·25전쟁 중 게릴라 소탕에 큰 공을 세운 권영도 경위의 공적을 기려 생전에 정부 포상으로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고 전사 후에는 순경에서 2계급 높은 경위로 추서했다. 

 그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2월 전쟁기념관에서 이달의 인물로 선정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국가보훈처에서 시행한 6·25전쟁 50주년 기념 호국인물 100인에 선정 됐다.

 또한 국가보훈처는 산청군과 함께 고 권 경위의 흉상을 2003년 지리산 빨치산 토벌 전시관에 설치했다. 2015년 이후에는 국립산청호국원의 회의실을 권영도실로 명명하고 관련 나라사랑교육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다. 

 이제는 앞으로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일회성 이벤트식의 지역의 호국영웅을 알리는행사 보다는 지역 관계기관이 힘을 합쳐 시리즈 1탄의 강삼수 경위, 2탄의 권영도 경위와 같은 알려지지 않은 호국영웅들을 호국보훈의 달에 떠올리는 지역 호국영웅 추모의 날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행해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6·25전쟁 100주년에도 오늘 필자가 떠올린 ‘호국영웅 권영도 경위’를 그때의 국민들도 기억하길 염원한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