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출귀몰 기병대대 지휘관! 호국영웅 장철부 중령

  • 입력 2020.06.04 12:37
  • 수정 2020.06.04 12:39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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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산청호국원, 6·25전쟁 70주년 계기 호국영웅 알리기 시리즈 3탄>
신출귀몰 기병대대 지휘관! 호국영웅 장철부 중령

 

 지난달 25일 국가보훈처는 정책 중심 부처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든든한 보훈’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 장철부 중령.
▲ 장철부 중령.

 그 ‘든든한 보훈’은 첫째는 우리 보훈공직자와 보훈업무 종사자들이 국가유공자를 비롯한 보훈가족분들을 제대로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우리의 ‘약속’, 둘째는 국가유공자 들이 ‘나라를 되찾고, 나라를 지키며, 나라를 바로 세운’ 그 희생과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긍심’의 표현, 셋째는 모든 국민들에게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임을 인식시켜주는 바로 대한민국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의미한다.

 특히 “지난 역사의 의인들을 통해 앞으로의 의인들을 만드는 것, 우리의 청년 학생들이 국가유공자를 존경하고 본받을 때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의 재생산이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이것이 보훈을 매개로 국민통합과 더불어 더욱 번영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고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국가보훈처이며 그 중심에 바로 ‘든든한 보훈’이 있다.

 우리 산청호국원도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계기해 지난 역사의 의인인 6·25전쟁 호국영웅을 알리는 시리즈 기고를 통하여 우리의 후세들이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의 재생산이 이뤄질 수 있는‘든든한 보훈’을 실천하고자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광복군 출신의 국군기병대의 마지막 전설인 ‘신출귀몰 기병대대 지휘관!, 호국영웅 장철부 중령’을 알리려 한다.

 기병대? 얼핏 고구려 시대에 개마무사를 중심으로 하는 개마대나 고려시대 여진족 정벌에 나섰던 신기대를 연상케 하는 활이나 창으로 무장된 고대·중세시대의 전술부대 쯤으로 총과 포로 무장된 현대전에서는 없을 법한 전술부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6·25전쟁 시 우리 국군에도 이러한 기병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국군기병대는 1948년 1월 1일 조선국방경비대 수색 제1여단 내에 수색대를 창설 이후 기병 제2중대를 편성, 1948년 4월에 2개 중대의 기병대대가 창설됐고 6·25 전쟁당시 이 기병대대의 수장이 바로 장철부 중령이었다.

 장철부 중령은 1921년 평안북도 용천 출생으로 1944년 1월 일본의 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강제로 일본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자 일본군으로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 치욕감을 느껴 일본군을 탈출해 대한민국임시정부 망명했고 이때에 본명인 김병원(金秉)을 장철부로 개명해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했다.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장철부 중령은 제1지대 제1구대 유격대장으로 중국 하남성 필양현의 일본군 병참기지를 습격하여 많은 군수품을 불태웠으며 일본군 수송열차를 격파하는 등의 독립운동에 참여하던 중 1945년 3월께 무장독립운동의 체계적인 전개를 위해 김구 선생의 추천으로 중국 황포군관학교 기병대에 입교했고 조국의 광복 2년 뒤에 졸업해 1947년 조선경비사관학교(현재의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1948년 임관 후 조선경비사관학교에 남아 소대장, 중대장, 전술학 교관 등을 역임 후 국군 기병대대장으로 보직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

 1950년 6월 25일 장철부 중령이 이끄는 기병대대는 의정부로 출격하여 수색작전을 전개한 후 한강 이남으로 철수해 진지를 구축해 6월 29일 한강을 도하하는 북한군 수백 명을 사살, 7월 2일 이후 사흘간은 과천에서 한강을 도하하는 북한군의 선견대를 공격해 남하를 지연시켰고 7월 11일에는 충남 공주 유구리 전투에서 북한군 1개 대대를 섬멸시키기는 전과를 거두었다

 7월 14일에는 공주에서 북한군에 포위된 미군 제63포병대대를 구출하는 작전을 성공시키고 7월 15일 또다시 북한군에 포위된 미군 제24사단 34연대 3대대를 기습공격으로 구출하는 전과를 거두는 등 이처럼 장철부 중령이 이끄는 국군 기병대는 정찰, 수색, 연락을 비롯해 북한군을 기동 타격하는 기습부대로 현대전에서는 보기 힘든 ‘기마돌격전’을 연상케 하는 신출귀몰한 부대였다.

 하지만 8월 4일 장철부 중령은 경북 청송지구에서 압도적 화력을 가진 북한군 12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다가 큰 부상을 입었고 대대지휘소가 점령당할 지경에 이르자 “포로가 되는 수치와 불명예보다 죽음을 택하겠다”며 자신의 권총으로 자결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한국광복군으로 독립운동을 한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2002년에는 6·25전쟁 참전 유공으로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여기서 우리가 또 알아야 할 것은 장철부 중령 외에도 이처럼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웠던 한국광복군 출신 6·25참전 위·영관급 호국영웅이 2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인들을 한 분 한 분 알리고 이들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정신이 대대손손 이어지게 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보훈공직자와 보훈업무 종사자들 몫이자, 진정한 ‘든든한 보훈’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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