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웅 칼럼] 화상(火傷) 장애 체험 4일 -무관심이 비극을 낳는다-

  • 입력 2020.06.24 13:58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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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자기결정권을 상실하는 순간 그 생명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Paul Srtre, 19051980)는 화려한 생명의 존엄은 실존(實存)으로 승화되면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고 했다.

 특히 실존적 존재는 무관심을 극복하는 총체적 주체성이다.

 때문에 무관심은 비극을 낳는다.

 언제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문제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했을 때 그 당혹감을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우리 몸 전체는 모두가 귀중하고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근원적 생명력의 소유인 동시에 주체적 가치인 것이다.

 필자는 지난달(5월 21일) 오후 4시 20분쯤 집에서 끓는 물에 양손과 무릎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마산에서 화상(火傷) 전문병원인 은혜병원(원장 김경임) 화상 전문센터(주치의 박용근 과장)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 때부터 ‘손가락 10개’를 하나도 쓸 수 없어 물 한모금도 마실 수 없게 됐다. 누군가 곁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손가락 10개의 가치가 이렇게 중요하고 절대적인가를 새삼 느꼈다.

 치료하는 과정에서 병원을 뛰어 나가고 싶을 정도로 처절한 통증과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의 고통이 소멸되는 느낌을 받았다.

 손가락 10개의 가치가 마치 인간 총체의 중심축이 되는 것처럼 단 1초도 행동할 수 없는 절대적 의존의 한계에서 40일간을 버틴 것이다.

 사람의 몸 전체가 어느하나 귀중하고 고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손가락 10개의 절대적 가치는 무관심속에서 가볍게 취급되거나 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불의의 살고를 당한 뒤에는 수 많은 고통과 절망, 그리고 날카로운 신경의 울림을 처절하게 경험한 것이다.

 영국의 소설가 서머셋 모음이 쓴 ‘달과 6펜스’란 소설속에서 모든 사랑의 비극은 ‘무관심’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가족과의 무관심, 동료간의 무관심, 심지어는 부부간의 무관심은 결국 매마른 사랑의 종착으로 끝나는 것이 일상의 일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번 손가락 화상을 입은 뒤 아내가 보여준 헌신적 보살핌과 은혜병원 김경임 원장의 끝없는 관심이 결국 손가락이 정상적으로 움직여 이 글을 쓰게 만든 것이다.

 지난 2018년부터 전문화상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마산은혜병원은 화상전문치료 병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단시간내에 환자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날카로운 감각과 균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환자관리 때문이다.

 몸에 붙어 있는 모든기관은 크든 작든 각기 제 역할이 원천적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함은 물론이다.

 아무런 생각이나 관심도 없다가 갑자기 문제가 발생하는 ‘회색코뿔소(gray Rhino)’형의 일상을 자주 보게 된다.

 이 회색 코뿔소형의 문제는 ‘지속적인 경고를 줘서 위험이 충분히 예상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다 큰 위험을 당하는 행위’를 회색 코뿔소형이라고 말하는데 설마설마하다가 막상 큰 피해를 입게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실제적 존재의 가치의 인식은 무관심을 극복하는 총체적 주체성인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존재의 개별성(individuality)은 끝없는 현실을 인식하는 데 있다.

 그렇게 때문에 무관심속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더 많은 고통과 처절한 갈등을 수 없이 느낄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실존적 관심이 생명의 근원을 찾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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