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김해를 사랑한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 3부

  • 입력 2020.07.09 16:08
  • 기자명 /한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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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은 정몽주 선생이 1374년 경상도 안렴사로 재직할 때 이같은 이야기와 야은의 시를 전해 듣고 마음이 끌려 야은의 시 ‘김해기 옥섬섬’ 각 연의 끝 글자인 ‘靑明手情(청명수정)’의 운을 따서(차운해) ‘靑明月情(청명월정)’을 운으로 야은의 심정을 대신해 지은 시가 아래의 시다.

 고려의 대학자요 萬古(만고)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께서 이러한 풍류도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捕隱 鄭夢周 先生 詩(포은 정몽주 선생 시) ‘金海妓生 玉纖纖(김해기생 옥섬섬)’ 

此生何日 眼還靑(차생하일 안환청)
이승에서 언제 이렇게 반가운 눈으로 볼수 있을까
太古遺音 意自明(태고유음 의자명)
그 옛날 거문고 소리가 어떠했는지 절로 알겠구나 
千載玉人 滄海月(천재옥인 창해월)
천년에 한번 날까 말까하는 미인 옥섬섬은 푸른 바다의 달 빛 같이 여전히 아름답고
重遊胡得 獨無情(중유호득 독무정)
다시 만나 이같이 서로가 즐거운데 어찌(胡) 나만 정이 없다 하느냐.

 *靑眼(청안): 기쁜 마음으로 보는 따뜻하고 정다운 눈초리.
 *太古遺音(태고유음): 옛날 가락국 2대왕 거등왕이 초대했다는 칠점산(현재 김해공항 부근) 선인이 탄(연주한) 거문고 소리.
 * 정몽주 선생의 포은집에 이 시를 지은 배경을 설명한 ‘作昔宰相?隱田先生爲 鷄林判官時 遺贈 金海妓玉纖纖云…(작석재상야은전선생위 계림판관시 유증 김해기옥섬섬…)’으로 시작되는 글이 있는데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재상 야은 전 선생이 계림판관으로 있을 때 김해기생 옥섬섬 에게 시를 한수 지어줬고 10여년 뒤 합포진에 경상도 도순마사로 부임해 왔는데 옥섬섬은 이미 늙었다. 그래도 옥섬섬을 불러 가까이 두고 거문고를 타게 했다. 내(정몽주)가 이 이야기를 듣고 그가 쓴 시의 운을 따 4수의 절구를 지어 벽에 걸어 뒀다”

 전녹생과 옥섬섬을 소재로 한 시는 고려말 조선초 문신·학자인 권근(1352~1409, 호는 양촌, 조선조 예문관대제학 역임)도 읊은바 있는데 1390년 김해에 유배 왔다가 ‘次燕子樓詩三韻(차연자루시삼운)’이라는 제목으로 시 세수를 지었는데 둘째 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玉手纖纖 二八春(옥수섬섬 이팔춘)
옥 같은 손 옥섬섬은 이팔 청춘이라
舞衫羅襪 動香塵(무삼나말 동향진)
춤추는 비단 저고리와 버선 향기가 이네
文章?隱 琴中趣 (문장야은 금중취) 
야은(전녹생)의 문장과 거문고에 담긴 풍취
能繼高風 有幾人(능계고풍 유기인)
이처럼 높은 풍취 이어받을 이 몇이나 있겠느냐

◆ 참고문헌
 김해 향교지 하권 1047, 1157쪽 (2007.8.15. 발행), 조해훈 시인(동아대 홍보팀장) 김해뉴스 기고문 (2017.3.29.자).
 포은문화연구회 기고문, ‘포은 선생의 김해산성 기행’ (2009.11.30.자).
 포은문화연구회 기고문, ‘포은 정몽주 선생 약주를 한잔 걸치며’ (2009.12.2.자)
 ‘맑고 푸른 물’, 고려시대 학자와 김해기생 옥섬섬 (2009.7.26.자), ‘고전문학 사전’ (2004.2.25.자) 등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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