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김해를 사랑한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 7부

  • 입력 2020.08.05 14:19
  • 기자명 /한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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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2년 이성계의 명성이 높아가자 조준·남은·정도전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책모가 있음을 알고 이들을 제거하려 했다. 

 이를 눈치 챈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자신의 문객 조영규 등을 시켜 개성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시해했으며 그해 음력 7월16일 권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이성계가 고려 34대 마지막 임금 공양왕의 왕위를 선양받아 조선을 개국했다. 

 * 정몽주를 시해하기 전에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 (뒤에 조선 3대 태종이 됨)은 포은의 뜻을 떠보려고 ‘何如歌’(하여가)를 부르자 이에 포은은 고려만 섬기겠다는 ‘丹心歌’(단심가)를 불렀다. 

 하여가 :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다.
 단심가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조선초 대사성 이색은 그를 ‘東方理學之祖(동방이학지조)’라고 높이 평가했고 고려말 어려운 시기에 정승의 자리에 올라 아무리 큰 일이라도 사리에 맞게 조용히 처결했다.

 개성의 숭양서원 등 13개의 서원에 제향되었고 조선의 숙종·영조대왕·고종황제도 선생의 절의를 칭송하는 시를 남겼다. 묘 아래에 있는 영모재, 영천의 임고서원 등 몇 곳의 서원에 그의 초상을 봉안하고 있다.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묘현면 능곡로 45에 있다.

 

 숙종대왕(1674~1720)이 지은 포은선생 頌節詩(송절시)

節義千秋高(절의천추고)
절의가 천추(오랜 세월)에 높으니
平生我敬重(평생아경중)
평생 내가 존중하도다
列祖屢褒崇(열조누포숭)
열조께서 여러번 포숭 하였거니와
士林孰不聳(사림숙부용)
선비라면 누구인들 공경하지 않으리오

 

◆ 참고문헌
 김해 향교지 하권 1047, 1157쪽 (2007.8.15. 발행), 조해훈 시인(동아대 홍보팀장) 김해뉴스 기고문 (2017.3.29.자).
 포은문화연구회 기고문, ‘포은 선생의 김해산성 기행’ (2009.11.30.자).
 포은문화연구회 기고문, ‘포은 정몽주 선생 약주를 한잔 걸치며’ (2009.12.2.자)
 ‘맑고 푸른 물’, 고려시대 학자와 김해기생 옥섬섬 (2009.7.26.자), ‘고전문학 사전’ (2004.2.25.자) 등

 


(김해를 사랑한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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