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모] 안철수 시인 ‘풍잠風簪’

  • 입력 2020.09.28 18:39
  • 기자명 /한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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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잠風簪’ 


그날, 생니에 종일 바람이 들었을 때
생니를 뽑아놓고 이별은 숲으로 갔다

오랫동안 쓰다듬던 침묵이 쌓이고 쌓였을, 그곳에 가면 붉은 낙원이 떨어져 있다 뼈의 직립이 가득한 숲, 가끔 피부가 투명한 밤 울음이

가래 끓는 소리로 소나무 뿌리에서 흘러나왔다 곧게 다져놓은 산 짐승의 발자국, 지게를 끌던 길, 아직도 보여줄 체온이 남은 객혈을 검은 안개가 끌어안고 있는

반백년은 떠나 있었을 동안 숲이 된 집 터, 돌짝밭 고구마, 감자를 캐던 괭이의 기억은 칡넝쿨, 가시덤불을 키우고, 바짓가랑이 걷어 올린 채 바람만 스쳐도 아픈 정강이로 오래 지킨 나무들

거미가 잠들고 밤은 깊어도 부릅뜬 평토장은 아프지만 아플 수 없어 깨진 옹기에 담겨 숲보다 짙어 겨울이 짙고 여름이 짙은 동안 풍잠이었을 눈동자를 품고 있는

그리움의 내벽은 숲보다 깊었다 손  마디 굵던 뼛가루는 바람, 비, 눈, 골골한 갈빗대, 골짝마다 흩어진 사금파리는 헛기침 같은

당신을 숲에 묻고, 당신에게 숲을 묻는? 조금 더 깊게 묻었어야 할 그곳, 

‘안녕하신가요’

 

 

◆시작노트
 고향 떠난 지가 근 50년이다. 반백년이 지난 간 것이다. 아버지를 그곳 뒷동산에 모셔두었다 가끔 생니에 바람 들듯 아프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마을 살던 집터는 이미 숲이 되고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 적에 살던 집터는 지금은 완전히 없어지고 숲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며칠 뒤면 추석이다. 또 잇몸이 아플 것 같다.
 정말 그곳에서 안녕하실까?

 ◆안철수 시인 약력
 부산거주
 성원실업 대표
 시사모 이달의 작품상 (2020년4월) 수상
 시사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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