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모] 유호종 시인 ‘고비사막의 삯지게꾼’

  • 입력 2020.10.06 12:19
  • 기자명 /한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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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사막의 삯지게꾼’


낙타는 오르막에 강하다

팔월 땡볕 멀리서 
낙타는, 

모래사막처럼 더딘 걸음으로 동대문시장을 오르내리는 나를 긴 눈썹으로 위로하는 중이다

낙타가시풀의 핏물 흥건한 목마름을 기억하는 난, 전생에 가누지 못할 등짐을 지고 실크로드를 서걱거리던, 고꾸라져 일행을 따라가지 못하던

늙은 낙타

어린 시절 거대한 사막의 물결무늬를 닮은 좁은 미로 속을 헤맸지만 사막에서 모래바람이 몰아칠?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주저앉아 있는 법을 먼저 배운 나는, 오늘도 앞발과 뒷발 모두 가지런하게 두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동대문시장 서걱거리는 모래밥을 먹은 지 삼십 년, 패션몰의 물건을 옮기는 지게꾼이었다는 것은 감추고 싶은 소문, 사막을 건너다 죽은 늙은 낙타였던 것도 영원한 소문으로 둔다

열대여섯, 양말목을 뒤집어 실밥 가위질하던 시다는 미싱 앞에 중년으로 낡아 있고 미로 속을 평생 헤맨 지게꾼은 여전히 남들 뒤꽁무니를 빼는 고비, 최악의 고비 4층으로 배달 중이다
 
한 번 나선 길은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서야 끝이 난다 하늘이 사막을 닮아 누렇게 물들었지만 팩- 침을 뱉고는 다시 후들거리는 무릎을 곧추 세운다

그의 몸속에는 여전히, 전생을 기억하는 늙은 낙타가 살고 있다

 

 ◆시작노트
 25년 전 오일장 난전에서 옷장사를 하면서 본 동대문 새벽시장의 활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통통 뛰는 활어처럼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삶의 현장 속에서 미로 같은 시장통로를 이동하는 지게를 지고 힘겹게 배달하는 삯지게꾼은 충격이었다.
농촌에서도 사라지고 있는 지게가 동대문시장 패션몰, 초스피드 시대에 지게꾼이라니,늙은 낙타가 바로 고비사막을 막 건너는 나였다니, 반환점을 돌아 오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되돌아 갈 수 없다

 ◆유호종 시인 약력
 시사모 동인회 운영위원
 ㈜소금과 사람들 대표
 독서포럼 MBC나비 회장
 시사모 2020년 7월 이달의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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