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가구약(不可救藥)

  • 입력 2020.12.10 12:21
  • 수정 2020.12.10 12:22
  • 기자명 /노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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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종욱 기자.
▲ 노종욱 기자.

 시경(詩經) 대아(大雅)에는 한 충신의 답답한 마음을 노래한 판(板)이라는 시(詩)가 실려 있다.

 서주(西周) 말엽, 여왕(呂王)은 포학하고 잔혹한 정치로 백성들을 핍박했다. 백성들은 몰래 그를 저주했으며 일부 대신(大臣)들까지도 그에게 불만을 품었다. 여왕(呂王)은 백성들이 자신을 욕하고 있음을 알고 그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유명한 관리였던 범백(凡伯)은 왕의 이러한 처사를 지나치다고 여겨 과감하게 글을 올렸으나,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게 됐다.

 ‘하늘이 저리도 가혹한데 날 그렇게 놀리지 마소. 늙은이는 진정으로 대하는데 젊은이는 교만스럽네. 내 하는 말 망령된 것 아닌데도 그대들은 농으로 받네. 심해지면 그땐 고칠 약도 쓸 수 없다오(不可救藥).’

 기원전 841년, 백성들의 폭동으로 여왕(呂王)의 폭정은 결국 종말을 맞게 됐다.

 불가구약(不可救藥)이란 ‘일이 만회할 수 없을 지경에 달하였음’을 형용한 말이다.

 올해는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의 창궐로 온 세상이 혼란스러워졌다.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모두가 좋은 약을 찾아야 할 때이다.

 청정골 산청군은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져 있더라도 지난 4월 실 진주거주자인 1명의 확진자가 나온 이후, 행정을 비롯해 전 주민들의 노력으로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 후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 청정골 이미지에 걸맞은 청정지역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인근 진주시에 시작된 이통장 발 확진자가 무더기 나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지난 8일, 진주에서 산청으로 근무 차 온 확진자와 접촉한 또 1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는 최근 진주발 확진자의 속출로 산청지역 주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산청군은 지리적 여건상 진주시와 인접해 있어 예로부터 진주는 산청주민들의 생활근거지이기도 하다. 그런 특성 때문인지 산청군 관내에 공무원을 비롯한 직장인들 대 다수가 진주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낮이면 읍 소재지의 공용주차장은 주차하기가 힘들지만 오후 6시 이후에는 텅텅 비어버린다.

 오죽하면 도둑들도 오후 6시면 퇴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산청읍 소재지는 적막강산(寂寞江山)이 돼버린다. 오후 6시 이후에는 3번 국도는 산청에서 진주까지 차량 행렬이 이어진다. 거의 명절 차량 대 이동을 연상시키는 직장인들의 퇴근차량들의 행렬인 것이다.

 산청군의 야간 경제활동은 이때부터 거의 멈춰버린다. 이게 작금의 산청군 현실인 것이다.

 지난해 산청군은 ‘산청군 인구정책 5개년 종합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줄어드는 인구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 줄어드는 인구는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듯, 답보에 빠져있었다.

 인구유입에 대한 기반구축, 정주여건 기반조성, 기업지원 활동 강화, 귀농귀촌인 지원 강화, 생애주기별 지원 강화 다 ‘뻔한’ 말이다.

 하지만 이 ‘뻔한’ 말에서 답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산청군의 인구 배가에 대한 ‘뻔한’ 대안들은 현실과 접목하고 공격적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 실 거주자에 힘이 되고 지역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그런 정책들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산청을 찾는다.

 우선 주소만 산청에 두고 진주에서 생활하는 공무원들부터 관내에 실거주를 해야 한다. 그래야 만이 산청읍의 경제는 활성화될 수 있다. 주거거주의 자유를 논하기 전에 산청군 자체의 존폐를 걱정해야 한다. 그 시기는 곧 도래할 것이다.

 또 진주에서 산청으로 출퇴근하는 기관 단체 등, 직장인들의 관내 거주를 유도하고 권유해야 할 것이다.

 출퇴근 직장인들의 산청 관내 거주자에 대한 혜택들을 기관별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혹 자들은 형평성에 맞지 않고 일부들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래야 한다. 관내 거주자들은 넓은 이해와 배려로 산청군과 행복을 같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산청의 강수량이 많아지면 진주가 근심하고 진주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산청에서 걱정을 더 많이 한다. 이제는 깊이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인구감소로 인한 행정구역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행정과 지역주민 합심으로 이러한 위기를 헤쳐 나야가 한다.

 진주시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할수록 산청주민들의 불안감은 진주시민들보다 더 커질 것이다. 이제는 행정도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주민들의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

 불가구약(不可救藥)이라 했다. 이런 지경이 되면 만회할 수 없다. 후회를 해도 때는 늦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같은 위기의식으로, 같은 마음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만이 행정도 지역주민들도, 관내에 출퇴근하는 직장인들도 다 같이 산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같이’의‘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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