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극복 체험수기 및 Tomorrow 독후감 수상작] 난 하나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노란빛 개나리가 활짝 피어났다는 소식을

  • 입력 2021.01.24 15:08
  • 기자명 /정리 한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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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연합일보 코로나 극복 체험수기 및 Tomorrow 독후감 수상작 : 체험수기 고등부 최우수상 : 난 하나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노란빛 개나리가 활짝 피어났다는 소식을

 

 난 외갓집이 항상 가까운데 있었기 때문에, 외갓집에 자주 놀러간다.

 특히, 외할머니께서 그릇 장사를 하셨기에 ‘그릇 집’이라 부른 곳을 더욱 자주 간다. 그곳엔 항상 노란빛으로 밝은 웃음이 피어난 곳이었다. 나의 소꿉친구이자 단짝인 사촌동생, 정희가 있었으니까.

▲ 이빈군북고등학교
▲ 이빈군북고등학교

 우리 둘은 1살 차이로, 그 어떤 친구보다 성향이 잘 맞았다. 어린 시절, 친척어른들 몰래, 화장실에서 거품 만들며 놀다가, 물세 많이 나간다며 민정이 언니한테 혼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보며 항상 밝게 웃었다.

 하지만, 정희의 웃음소리는 하나, 둘씩 작아져만 갔다. 이유는 정희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정희의 아빠인 외삼촌이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원래부터 어린 정신연령을 지니고 있으며 파킨스병을 앓고 있었던 외삼촌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희는 나의 앞에서 억지로 웃었다. 이토록 애쓰는 정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잔인했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외삼촌이 입원한 병원에 외부인에 대한 출입이 전면 금지됐다.

 환자의 보호자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환자와 만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늘은, 정희가 아빠와 함께 보내며 추억을 쌓을 시간들을 앗아갔다. 그만큼 정희의 웃음소리는 더욱 작아져만 갔다. 그런데도 정희는 웃었다.

 그리고 눈물을 마스크로 가린 채, 고등학교 교문으로 입학했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온라인수업으로 친구 사귈 틈도 없을뿐더러, 바로 1차고사인 입시의 틀에 몸을 던지라니, 정희의 부담은 누구에게도 마음 털어놓을 사람 없이 커져만 갔다. 정희는 처음으로 나의 앞에서 웃지 않았다. 

 그 다음날, 정희는 교실에 엎드려 있었다.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이유는 본인도 몰랐다.

 또 그 다음날, 정희의 눈에 귀신이 보였다. 나의 눈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정희의 눈에 보였고, 정희는 두려워했다. 또 그 다음날, 정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또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난 야자도 재끼고 그릇 집을 찾았다. 그곳에는 밝은 노란 빛이 대낮에도 꺼져있었다.

 숙모는 계속 울고 있었다. 난 온몸을 떨며 작아진 숙모의 체구를 안아주고 정희의 방문을 두드렸다. 정희는 분명 저 방안에 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열쇠로 따고 들어갔다. 어두운 방구석에 정희 혼자 이불을 둘러싸며 떨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희를 안아주는 일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난, 안아주는 거야말로 나의 온기가 정희에게 닿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럼에도 정희의 상태는 점점 더 심해져버렸다. 흔히 말하는 ‘빙의’가 되기도 했었고, 자살행위까지 시도했다. 도저히 정희 혼자 둘 수가 없어보였다. 그렇지만, 숙모는 장사를 위해 집을 비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낮에는 막내외삼촌이, 학교 마치고 난 후, 정희와 함께 지내기로 했었다.

 그렇지만 참으로 야속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희의 그 행위가 나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온라인 수업 때 기기이상으로 놓친 수업까지 보충을 하자니, 나의 마음속 부담이 점점 더 쌓아져갔다.

 이때 더더욱 불행한 것은 정희가 나에게 한, 말 한마디였다. “언니, 나 신경 쓰지 말고, 언니 공부해.” 그 말에, 하늘이 너무 야속해서 공부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점점 떨어지는 성적과 정희를 내버려둔 채 앞만 갈까하는 이기적인 나의 정신상태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너라도 살아야하지 않겠니”하는 어른들의 말에 이끌려 그릇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물론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주말에 잠시 만나, 사람들이 없는 공원에 가거나, 그릇 집에서 영화도 같이 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희의 상태는 심각해져갔다. 귀신을 보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이보다 더 가슴이 찢어졌던 일이 벌어졌다. 잠깐 동안 자신이 했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까지 일어났으니. 결국, 정희는 스스로 입원하길 결심했다.

 정희의 병명은 공황장애, 우울증 등 5가지 넘는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 정희가 입원한지는 반년이 넘어간다.

 그 사이 코로나 사태는 더욱 심각해져갔기에, 정희와 면담해서 만나는 희망도 품지 못한다.

 또한 정희가 입원한 병원 특성상, 환자는 휴대폰 사용이 안 되니, 어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안아주기로 온기를 전달하자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그 마음조차 이젠 사치가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가 앓고 있는 아픔들을 ‘코로나’ 녀석이 더욱 칼로 찢어버리는 걸까. 이 아픔이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그 아픔을 함께 어루만져줄 시간이라도 간절히 바라는 마음조차 하늘은 알아주지 않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 조차 없다. 초라하고 우울하며 하염없이 가라앉아 내려간다.

 그런데도 난 사치스러운 꿈을 꾼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다시 정희와 만나 포근히 안아주며 온기를 전하는, 정희가 아빠와 만나게 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그릇집이 다시 밝은 노란빛 웃음으로 피어나는, 그런 개나리가 활짝 핀 그 길을 함께 또다시 손잡고 걸어 나가는 그 날을.

 

 

※ 본란은 ‘경남연합일보 코로나 극복 체험수기 및 Tomorrow 독후감’ 공모전(2020년 12월 14~31일 진행) 수상작을 싣는 공간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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