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야 소나무야’
홍천 수타사 가는 길목 키가 큰 소나무 모여 사는
숲을 만났지 밑둥에 서슬 퍼런 칼자국
흉칙하게 아직 새겨있는,
일제강점기 말 전쟁 자원이
부족했던 일본이 송탄유를 만들기 위해
송진을 빼내간 흔적이라네
빼앗긴 땅 위에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모국어를 삼키며
뺏기고 또 빼앗기기만 했네 이후로도 오래오래
남아 있을 수탈의 칼자국 잊지 말자고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울혈이 끓는 문신
소나무야 소나무야
오뉴월 서릿발 같은 내상을 입은 소나무야
상처에 씨앗을 묻고 살림을 키워 온 명아주 꽃 같은
사람들아
◆시작노트
지난 가을 홍천 공작산 수타사 입구에서 만난 소나무 숲 밑둥에 깊은 생채기를 안고 살고 있는 소나무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일제강점기의 엄연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먼 옛날이야기가 아닌데 자주 잊고 살았구나.
아픈 역사에 매여 살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잊지는 말아야 한다.
다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빼앗기거나 점령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수영 시인 약력
2019년 계간 ‘시와편견’에 신달자 시인 추천으로 등단
시집 ‘나무는 하느님이다’ 등
시사모, 한국디카시인모임 동인
시편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