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의생각](59) 캄보디아(6) - ‘평양랭면관’의 임유경씨

씨엠립서 보았던 평양랭면관 무희

  • 입력 2008.12.12 00:00
  • 기자명 문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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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 시내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다니다가 구시장 근처에서 눈에 띄게 피부가 희고 몸매가 날씬한 아가씨 2명이 길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았다. 한눈에 ‘평양랭면관’ 무희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물건을 사러 나왔는지 커다란 종이가방을 하나씩 들고 시장 쪽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사라졌다.
아직 숙소도 정하기 전이었지만 저녁식사는 꼭 저기서 해야지 하고 내심 작정하고 말했다.

이: “예? 평양랭면요? 에이, 캄보디아까지 와서 무슨 평양관이에요?”

이기훈 씨는 질색을 했다. ‘평양랭면관’에서 저녁식사를 하자는 말에 대번에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가 무슨 패키지 투어 온 것도 아니고…’ 하는, ‘이 여자가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구나!’ 하는, 실망의 표정이 역력했다.

물론 안다. 방콕에도 ‘평양관’이 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이북식당’은 패키지로 단체여행 오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우루루 몰려가서 한 끼 때우고, 이쑤시개 하나씩 입에 물고 나오면서, ‘북한식당이 별건가 뭐…, 북한 아가씨들 보는 재미지.’라고 한 마디씩 하며 나오는 투어 코스로 인식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나의 난데없는 ‘평양랭면’ 타령에 난색을 드러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모른다. 씨엠립의 ‘평양랭명관’이 얼마나 특별한지.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평양랭면관’의 음식과 공연, 그리고 무희들의 외모는 가히 씨엠립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경쟁력을 자랑한다.

1964년 북한과의 수교 이후 북한이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직영해온 식당인 만큼 유서(?)가 깊어서인가, 이 식당에서 보여주는 공연과 노래, 그리고 아가씨들의 미모는 정말 수준급이다.

사실 2년 전에 처음 씨엠립을 찾았을 때는 그저 하나의 코스 정도로 생각하고 호기심 때문에 이곳에 들렀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받았던 충격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북한 출신 미인들의 절도 있는 동작과 말씨,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한 화법과 표정은 정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었다.

그래서 얼마 후 방콕에 새로 ‘평양관’이 개업했을 때는 열일 젖혀두고 그곳을 찾았던 거였다. 그러나 방콕의 새 ‘평양관’은 씨엠립의 ‘평양랭면관’에 비해 정말 ‘아니올시다’였다. 물론 아직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하여간 씨엠립에 비하면 2퍼센트쯤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씨엠립 길거리에서 ‘평양랭면’의 무희들을 만났을 때는, 그래서 무척 반가웠다.
단정하게 묶은 생머리에 얌전한 디자인의 원피스, 살색 스타킹에 굽 높은 슬리퍼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촌스러운 듯 예쁘고 당당한 그네들의 자세와 잘 어울렸다.

똔레삽에서 돌아오자마자 공항 방면 6번 도로를 달려 ‘평양랭면관’을 찾았다. 식당은 2년 전이나 매양 변한 게 없었다. 식당 앞 주차장 가득 단체관광객 전세버스가 빽빽이 줄지어 서 있는 거나, 삼삼오오 가이드들이 입구에 모여서서 담배연기를 뿜어대고 있는 모습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500석 남짓 되는 대형 홀에도 손님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미 식사와 공연이 끝나고 일어서서 나가는 분위기다.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와서 생긋 웃으면서 빈자리로 안내해 준다. “두 분이십니까?” 하고 묻는 얼굴에서 언뜻 피곤한 기색이 배어나온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애교머리가 젖어있는 것을 보니 방금 공연을 마친 모양이다.

내가 물었다.

“아직 공연이 한 차례 더 있지요?”

아가씨가 대답한다.

“아닙니다. 오늘은 단체손님이 많아서 6시 반 공연을 크게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공연은 끝났습니다.”

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자 아가씨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조금 일찍 오지 그러셨습니까? 공연은 매일 합니다. 내일 오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 며칠 동안 계실 겁니까?”

주문을 받는 내내 내일 꼭 다시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주방 쪽으로 들어간다.

이: “예쁘네요.”

김 : “방콕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니까요. 무용이랑 연주도 얼마나 잘하는데….”

여기저기 단체손님들이 우루루 일어나서 나가기 시작한다. 무희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대부분 배가 나온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다. 개중에는 짓궂은 포즈를 취하는 사람도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적당히 웃어넘기면서 노련하게 피하는 품이 그런 손님들 대하는 일에는 어지간히 이력이 난 듯하다.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자기 재능을 인정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식당에서 노래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아가씨들은 대략 스무 명 정도. 모두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공연자들이지만, 식사 주문 받고 식탁 차리고 치우는 일까지 도맡아 한다. 그런데다 짓궂은 손님 상대까지 해야 한다. 이제 갓 스무 살 남짓한 어린 공연자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그러기에 가끔 자기들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상대를 만나면 마치 꿈에 그리던 애인을 만난 듯 반갑고 좋은 얼굴이 되는 것이다.

냉면과 순대가 나왔다. 겨자와 식초로 양념을 하고 냉면을 먹으려는데 안쪽 홀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뛰어나온다.

임유경! 재작년 이곳에 왔을 때 ‘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하는 동요 ‘반달’의 곡조에 맞춰 독무(獨舞)를 했던 무용수다. 맥주 몇 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들더니 다시 잰 걸음으로 안쪽 홀을 향해 들어간다. 너무나 반가웠다. 냉면을 먹다 말고 아는 체를 하자 이기훈 선생이 깜짝 놀라며 묻는다. 어떻게 재작년에 잠깐 와서 본 무용수를 그렇게 기억하느냐는 것이다.

2년 전 그때, 무대에서 독무(獨舞)를 하던 그녀의 얼굴에는 정말 형언하기 힘든 슬픔과 그리움, 아픔이 배어 있었다. 그때 그녀의,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듯 붉게 상기된 얼굴, 그리고 온몸에서 슬픔을 쥐어짜내는 듯한 격정적인 춤사위는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이미지로 내 뇌리에 각인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공연을 보고서 나는 비로소 ‘반달’이라는 노래에 슬픔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

- 윤극영, ‘반달’

그녀의 춤은 분명 정식 발레도 아니고 고전무용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표정과 춤사위에는 형언하기 힘든 격정이 숨어 있었다.

그 한순간의 격정이 날카로운 창끝처럼 내 왼쪽 가슴을 찔러놓았고, 그래서 나는 그녀의 이름표를 유심히 보았고, 또 한동안 그녀가 무척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자기를 기억한다는 걸 과연 그녀는 눈치 챘을까? 아니면 오늘 자기 공연을 보고 감격한 관객 중 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새로 온 무용수인 듯 눈에 띄게 예쁜 아가씨가 오더니 우리 옆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한다.

“앗, 김태희다!”

우리 두 사람 다 그녀를 보자마자 똑같이 부르짖었다. 남한의 유명 여자 탤런트와 너무나 흡사한 외모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 아가씨는 진짜 자기 이름보다 ‘평양 김태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스타 중의 스타였다.

태국 국립 씨나카린위롯 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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