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화구화(以火救火)

승인2021.03.04l수정2021.03.0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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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종욱 기자.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는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인 안회(顔回)의 대화가 실려 있다.

 안회는 위(衛)나라로 떠나기에 앞서 스승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는 스승께 “위나라 국왕은 제 멋대로 독재를 한다고 합니다. 국권을 남용하고, 백성들 가운데는 죽은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전에 선생님으로부터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가라. 의사 집에 환자가 많이 모이기 마련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저는 이에 따르려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이에 공자는 “위나라 왕이 어진 이를 반기고 어리석은 자를 싫어한다면, 어찌 너를 써서 다른 일을 하겠느냐? 그는 왕의 권세로 너를 누르며 능숙한 말솜씨로 이기려고 덤벼들 것이니, 이는 불을 끄려고 불을 더하고 물을 막으려고 물을 붇는 일과 같다(是以火救火, 以水救水)”고 답했다.

 이화구화(以火救火)란‘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방법을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지난달 25일 지리산국립공원공단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진행됐다.

 이미 고인이 됐지만 지리산을 사랑한, 그래서 20여 년간을 지리산을 샅샅이 돌아 지리산을 소개한 ‘지리산 총집’의 저자 故서영식 선생의 유족들이 아버지의 삶과 혼(魂)을 담아 생전에 집필하고 제작한 지리산 관련 자료 기증식이 있었다.

 故서영식 씨는 지리산을 사랑한 나머지 1954년부터 1973년까지 지리산의 사계(四季)와 생태(生態) 그리고 등반로 등을 정리한 ‘지리산 총집’을 만들고 그를 토대로 ‘지리산 모형도’를 만들었다. 또한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그 모형도를 이듬해 산청군에 기증하기에 이르렀다.

 지리산 총집은 50년대부터 70년까지 지리산의 모습이 사진과 설명으로 기록돼 있었으며, 당시 지리산의 자료는 거의 찾을 수 없었고 또 민간인이 손수 제작한 그 자료의 가치는 감히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만큼 귀중한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현대판 ‘지리산 대동여지도’라 칭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 소중한 자료를 산청군은 리모델링을 이유로 50년간이나 군청 중앙현관을 지켜온 모형도를 폐기해버렸다. 

 모형도의 가치를 평가절하 해 버린 것이다. 무지해서 그랬다고 하기에는 너무 무식한 일을 저질러 버렸다. 항상 우리 곁에 있었던 모형도를, 익숙하기에 너무 쉽게 여기고 일고의 고민과 계획도 없이 폐기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마도 공무원들의 부모나 관계자의 작품이었다면 그리했을까? 눈앞에 작은 일들에 큰 가치와 중요함은 보지 못했다. 주민들 위에 군림했던 습성들이 남아 아직도 기증자의 마음과 유족들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귀찮음에 큰 의미를 저버리고 만 것이다.

 작금의 산청군은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것들을 또 주민들 삶의 질의 향상과 상관없는 짓거리들을 방대하게 수십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어 펼쳐놓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희망하거나 요구하는 일들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무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무너진 주민들은 정자(亭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먹고사는 것을 더 필요로 하고 있다. 민생고에 지친 주민들은 수십억 원을 들여 의미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동의보감촌의 앞뒤 출입문이 아니라 힘들게 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내일의 희망이 사라진 주민들은 멀쩡한 산을 까고 굽은 길을 바로잡는 것보다는 지금의 상황에서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주민들은 아주 작은 일에 감동하고 감사한다.

 물론 나에게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 상대방은 귀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귀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분명 귀한 것이다. 그것이상식이고 진리이다. 국보1호인 남대문이 그렇고 보물1호인 동대문이 그렇다.

 그리고 모든 국보급 유물이나 여러 문화재가 그런 것이다. 적어도 지리산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이‘지리산 총집’과‘모형도’의 값어치를 산청군만 외면한 채 모두가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다.

 산청군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다. 역사는 기록되는 것이다. 이처럼 작지만 중요한 역사는 분명 주민들이 뇌리에 깊이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기록된 역사를 외면하고 있는 산청군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분노에 찬 질타를 받을 것이다.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것은 산청은 지금 옛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있는 자료는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없는 자료들을 찾아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화구화(以火救火)하고 있는 산청군,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언제까지일지 심히 염려스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리산국립공원공단은 기증받은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많은 국민이 볼 수 있게 전시함은 물론, 기증자의 뜻을 받들어 영구 보존한다고 한다.

 故서영식 씨의 마지막 가는 길에도 지리산이 있었다. 지난 1991년 군립공원 웅석산을 도립공원으로 추진하기 위해 웅석봉의 모형도를 만들기 위해 산을 찾았다, 낙상(落傷)으로 운명(殞命)을 달리했다. 결국은 지리산에서 나서 지리산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이러하기에 故서영식 씨에게는 지리산은 전부였던 것이다.

 지금 산청군의 행태는 가히 목불식정(目不識丁)이라 하겠다. 목불식정(目不識丁.Not to know A from a windmill)이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노종욱기자  nju@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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