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호 칼럼]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다

승인202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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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성호 본지 전무이사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는 일상의 사소한 행동 중에 나타난다.

 특히 ‘배려’는 ‘코로나19’로 국민 대다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무엇보다 소중한 행동수칙일 것이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갈 때 뒤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 살핀후 뒤에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이 갑자기 닫히는 문에 부딪히지 않도록 잠시 문을 잡아줘야 할 것이다.

 길 한가운데에 커다란 돌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당장 돌을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옆으로 치워놓아야 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사소한 행동속에 그사람의 인품과 인격을 비롯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나타난다.

 봉사를 하면 왜 행복해 질까?

 행복이란 물질적인 만족이 아니라 정신적인 기쁨에서 얻을 수 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자들은 항상 무언가를 손에 넣어야 행복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은 마치 꿀벌이나 황소처럼 말없이 부지런히 일하면서 봉사와 희생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남들을 위해 거액의 돈과 재물을 내놓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몸을 굽혀 가난하고 불쌍한 유권자들을 안고 격려해 주고 있다.

 과연 이들의 행동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일까?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연극일까?

 아마 의식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진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고상한 인품을 지닌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항상 세심하게 살피며 관심과 사랑을 표현한다.

 대학시절 우리들의 가슴속에 음악으로 사랑의 향기로움을 전해준 이사도라 턴컨의 말이 생각난다. 감미로운 음악소리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은 가슴이 향기롭고 순수하기 때문이라고….

 이기적인 사람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이익만 챙기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을 무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베푼만큼 행복해 진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곧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탐욕을 이겨내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모든 고통과 번뇌를 떨쳐버릴 수 있다.

 또 시간을 황금보다 소중히 여기고 삶의 질과 인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사회에 봉사하며 희생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평생 무지를 벗어나지 못하며 부귀영화를 탐하느라 온갖 고통과 번뇌속에서 너무 빨리 인생을 소모해 버린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실망, 불안, 걱정 등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 속에서 부지런히 노력하는 자세일 것이다.

 현실을 회피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미래를 꿈꿔도 전혀 소용이 없으며 미래에 대한 이상이 너무 지나쳐도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의 환상이 아니라 현실의 희망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화제를 바꿔 오늘 필자가 쓴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다’는 칼럼 제목처럼 독자들에게 간곡히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가깝지만 먼 나라’로 불리는 한국과 일본 두나라는 영원히 용서못할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임을 다시한번 깊이 생각하고, 이제는 명실상부한 ‘가까운 진정한 이웃’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현실적인 운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일국교가 정상화된지도 어언 반세기를 훌쩍 지났으나 왜 불협화음이 자꾸만 재발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이젠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 일제와 관련된 일들이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60대 후반으로 접어든 필자의 가슴에는 창피하고 말 못 할 수치심과 서글픔이 함께 밀려와 깊이 묻어두고 싶을 뿐이다.

 한마디로 남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특히 ‘위안부’는 우리 조상들의 굴욕적인 숨기고 싶은 일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비롯 제2차 세계대전, 6·25사변, 월남전 등 과연 전쟁이 끝난 후 ‘위안부’와 유사한 일들을 독자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꽃병이 깨어지면 붙일 수는 있어도 자국은 못 없앤다고 하지만, 지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도 서로를 위해 다시는 꺼내지 말고 잘 덮어둬야 하지 않을까?

 

/배성호기자  baesh@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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