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중섭 재조명

승인2021.07.12l수정2021.07.1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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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근식 경남도의원 (통영2, 국민의힘)

 통영에 이중섭 미술관, 왜? 어떻게?

 이중섭과의 특별한 인연은 없다. 하지만 책 속에서 이중섭을 만났고, 제주도를 갈 때마다 이중섭 미술관과 거리를 찾았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이중섭과 통영의 인연을 알고 있는 통영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무언가 모를 마음의 빚이 내 마음 한구석 깊숙이 박혀 있는 것 같아 아리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한국전쟁 시절 11개월 남짓 보낸 제주도도 이렇게 천재 화가를 기억하고 있는데, 서귀포 생활을 거치고 가족들과 일본에서 잠시 만나고 헤어져 사무친 그리움을 채우려고 일본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해 온 통영, 이런 마음을 달래고 본인의 작품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통영이 이래도 되나 싶은 안타까움이 절절하다. 

 왜 통영에 이중섭 미술관이어야 하는가? 

 통영과 인연은 1952년 당시 나전 칠기 기술양성소 주인 강사였던 유강렬과 도움으로 이중섭은 터를 잡고 생활하기 시작 이곳에서 김용주 화백과 활동을 함께 했으며 종종 학생들도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1954년 항남동 성림다방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통영에는 많은 애환과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중 한 분의 제자가 통영 옻칠 미술관 설립자 김성수 화백이며 나전칠기 기술양성소 1기로 작품 활동이 현재까지도 가장 왕성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중섭이 거주했던 경남도 도립 나전 칠기 기술양성소가 국가 등록 문화재로 최근 등록됐다. 

 이중섭 작품 활동의 르네상스 시기였던 통영, 이제 그를 재조명하고 기려야 한다. 

 특히 통영은 이중섭이 2년간 거주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동양의 나폴리 통영’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통영 풍경, 통영 앞바다 등 통영의 멋진 풍경을 유화로 남겼고, 불멸의 대표작인 ‘흰 소’도 탄생시켰다.

 그리고 황소, 세병관 풍경, 충렬사풍경,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달과 까마귀, 부부, 가족 등 무려 30여 점이 넘는 작품이 통영에서 완성됐다. 

 이만큼 이중섭은 통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중섭에 대한 사업과 기록은 미비하기 짝이 없을 정도이며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라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물론 통영이 고향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북한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그에게 묻는다면 마음의 고향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2보=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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