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마당]선거의 바람과 민초

  • 입력 2006.05.24 00:00
  • 기자명 이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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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지방선거가 임박해오고 있다.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 자치단체장과 의회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는 각 당의 수뇌부들이 당력을 총동원하여 선거전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대선이나 총선이 아닌 지방 자치단체장 선거지만 마치 당의 사활을 걸 듯이 자당이 유리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력투구하여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급기야 야당의 대표가 피습을 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보도도 나왔다. 우리나라 정치가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선거는 대선일 경우 누가 정권을 잡느냐를 결정하는 일이고 그 외 선거는 국민을 위해 공무를 수행할 대행자를 뽑는 일이다. 이러한 뜻으로 행해지는 선거는 결국 크든 작든 권세를 부여하는 행위가 되어 권력자를 탄생시키는 결과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때가 되면 정치적 야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민중의 비위를 맞추어 한 표라도 더 얻으려고 기를 쓰며, 지지표를 얻는 것이 명예와 직결된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표를 얻기 위한 허황된 공약을 남발, 허세와 허풍이 들끓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무슨 바람이 분다는 둥 바람몰이에 신경을 쓰면서 특정 사람에게 집중되는 관심을 민심의 바람이라고 표현도 한다. 어느 지역에는 아무개의 바람이 불고 또 어디에는 누구의 바람이 분다 하면서 바람이 일어나야 표를 얻는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말하자면 선거 때부터 바람을 잘 타야 당선의 영광이 온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바람이라는 것이 묘하다. 사람의 마음이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불가사의한 속성이 있는가 보다. 매스컴이 발달된 정보사회에 있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달되는 어떤 소문이 때로는 바람처럼 퍼져나가 상황의 정확성을 살펴 판단할 겨를도 없이 남 따라 장에 가는 식으로 나도 모르게 소문의 바람에 휩쓸려 억측으로 왜곡된 판단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폴 발레리는 선거와 면장(免狀)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있어서 최대의 암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정치제도에 있어서 선거를 통한 소임자의 선출은 법의 평등을 실현하는 하나의 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다수로 결정하는 선출이 꼭 최적임자를 뽑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도덕적 모범이 되고 탁월한 능력이 있는 적임자가 있어도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 뽑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마하여 후보자가 된다는 것은 민중에게 자기선전을 하면서 지지를 부탁하는 것이다. 선거제도에 의해 이는 불가피한 것이기는 하나 어떤 면에서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제발 좀 알아달라고 부탁하는 일이야말로 옛날 말로 군자가 할 일은 아닌 것이다. 불가에 전해지는 유명한 잠언이 있다.

‘하려고 나서는 사람은 시키지 말고 안하려고 사양하는 사람을 추대해 시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청렴결백한 사람은 명예나 권세에 눈이 멀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대중이 많은 불가의 절에서도 절을 운영하는 대표 책임자를 뽑는다. 요즘 말하는 절의 주지소임이다. 우리 종단에서는 일부 총림을 제외하고는 직선제 선출방법을 써 선거를 한다. 이는 사회 선거법과 똑같은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대중이 뜻을 모아 적합한 인물에게 부탁을 하는 식으로 소임자를 선정했다. 이 때 곤란한 것은 대중의 뜻으로 부탁을 하면 대개가 서로 자신은 부덕한 인물이라 소임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사양을 해 버리는 것이다. 이래서 할 수 없이 시일을 끌다가 대중의 공의를 다시 전달,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간 고사인 삼고초려(三顧草廬)의 방법을 써서 마지못해 수락을 하게 해 소임을 맡겼던 것이다.

<대학 designtimesp=16993>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나온다. 일신의 수양이 되고부터 집안일을 하고 나랏일을 차례로 경영한다는 뜻인데 허황된 야망을 금기시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인권이 높아진 현대사회에 있어서 하나의 병폐는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아집 때문에 민폐가 흔히 발생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조용히 잠을 잘 시간에 옆집에서 고성방가 노래를 하면서 떠들면 이는 분명히 안면방해에 해당하는 민폐가 된다. 국민이 조용한 침묵 속에 나라의 사안을 은밀히 걱정하는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국민의 뜻과 다르게 정치적 구호를 외쳐대면서 시끄럽게 하면 민초들이 그 소음공해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도 이제는 좌우 분열시대의 정치에서 벗어나 조용한 정치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선거는 바람인가? 굿판인가? 가슴에 아무개의 성명을 적은 띠를 두르고 산문 앞에서 확성기로 떠들며 유세하는 사람을 어제 보았다. 다만 우리는 이번 선거에도 좋은 후보가 많이 나와 있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혹 선거의 바람에 민초들이 쓰러져 다치는 일이 없기를 동시에 바란다. 한지안/스님.승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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