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모] 성기웅(쏠) 시인 ‘광성 슈퍼 황씨’

  • 입력 2022.04.11 14:45
  • 기자명 /정리 한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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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 슈퍼 황씨’


날마다 야위는 슈퍼를 향해 노란 오후가 달려온다 슈퍼 앞 평상에서 맥주를 마시던 황씨가 덜컹 시선을 들어 올린다 나는 근처 은행에 가는 것인데, 그의 눈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예외 없이 박힌다 따가운 타격에 버스 쪽으로 턱이 돌아간다 자꾸만 살집을 부풀리며 다가오는 버스를 바라보다가 문득 얼마 전 깨진 얼음조각 같던 황씨가 떠올랐다 담배를 건네는 그의 손과 함께 얹히던 찬 바람, 이제는 담배만 팔아야겠네, 나와 관계없는 한숨이 뒤통수에 꽂혔던

슈퍼 주변 아스팔트에 깨진 술병들이 돋기 시작했다

멈춰 선 버스 지붕에 햇살이 꽂힐 때마다 노랗게 별이 튀어 오른다 눈이 부신 황씨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맥주잔 속으로 들어간다 고사목 닮아 가는 황씨가 맥주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다 건너편에서 조심스럽게 황씨를 살피던 1단지 주민들이 어느 틈엔가 베어낸 황씨의 살점을 내보이며 버스에 오른다 살 오른 버스가 다시 움직이면 창밖에 거품 빠진 고사목이 잔 속에서 걸어 나와 삐걱삐걱 슈퍼 안으로 사라진다

 

 ◆ 시작 노트
 광성 슈퍼 사장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슈퍼 건너편에서 주민들을 실어 나르던 대형 마트 버스를 보며 노랗게 변해가는 세상을 실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슈퍼는 아내에게 맡겨놓고 걸핏하면 평상에서 술을 마시던 그의 성이 황씨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결국 광성 슈퍼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서고 그가 동네에서 사라졌을 때 문득 떠올랐는데 왠지 황씨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도 별 일은 아니지만 황씨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성기웅(쏠) 시인 약력
 - 시사모 동인, 한국디카시인모임 동인
 - 월간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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