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폭력의 악순환

  • 입력 2006.05.25 00:00
  • 기자명 강종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에 불이 번쩍하며 정신이 아뜩해졌습니다. 연이어 큼지막한 손이 오른쪽 뺨도 후려쳤습니다. 영문을 몰라 얼떨떨하게 서있는데 선생님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당황스럽고 놀라서 눈물도 울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퉁퉁 부은 뺨을 비빌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31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때입니다. 학교 운동장 앞 조회대 아래 그늘 밑에서 친구와 노닥거리고 있는데, 1학년인 듯한 아이가 조회대 위에서 뛰어내리다가 엎어져서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친구는 교실로 들어가 버리고 필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어정쩡하게 있는데 저만치서 선생님이 달려왔습니다. 엎어진 아이를 안아 일으키더니 다짜고짜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아이를 때리기라도 한 것으로 오해하셨나 봅니다.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아니 기회도 없이 저는 못된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야, 너 이리 따라 나와!” “어쭈구리, 누가 겁낼 줄 알고!” “에잇! 퍽” “아욱, 코피!”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싸움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던 필자였지만 이 날만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례가 조금 길어지자 짝꿍이 투덜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종례를 마치자 급기야 선생님 욕을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학생의 신분으로서 선생님께 욕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씩씩대며 화장실 뒤로 짝꿍과 가게 되었고, 친구들은 너무나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야, 니가 선생님께 욕을 해!” “와, 욕 쫌 하모 안되나! 니가 선생님 애인이라도 되나!” “뭐라꼬, 이기 끝까지, 에잇!” 순간 필자가 이마로 짝꿍의 코 부위를 들이받아 버렸습니다. 코피가 주르륵 흐르고 싸움은 끝났습니다.

고2때였습니다. 담당 체육 선생님께서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체육 실기 시험을 타 학년 선생님과 체육 특기생 선배가 감독하게 되었습니다. 배구공을 두 손으로 튕겨서 몇 개를 하는지가 시험이었습니다. 두 조로 나누어서 시험을 치르는데, 선배도 어쨌든 같은 학생인지라 점수를 후하게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곧이곧대로 숫자를 세시면서 튕겨 올라가는 높이가 조금 낮다 싶으면 아예 개수에 포함시키지도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불만이 서서히 고조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시험을 치게 되었는데, 욱하는 성질에 공을 한번 튕기고는 그냥 자리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주둥이가 이만큼 나와서 자리로 들어가는 저를 보고는 선생님이 불렀습니다. “야, 너 왜 그따위야, 뭐야 왜 그래!” 성이 조금 난 목소리였습니다. 그냥 ‘죄송합니다’하면 끝날 일을 “샘예, 와 저쪽하고 요쪽하고 점수 매기는기 다릅니꺼, 아들이 열 받았다 아입니꺼!” “뭐라, 너거가 열 받아! 에잇!” 휙휙 퍽퍽, 크윽, 무지 아팠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며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필자는 대체로 얌전한 학생이었기에 맞을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맞는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꼭 주먹까지 나올 일도 아닌데, 참 이상하게도 그 시절엔 폭력이 사회 구석구석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폭력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문구용 칼로 얼굴에 상처를 입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언론에 나타난 용의자는 아직도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용의자는 군사 독재의 폭력 속에서 길들여지고, 결국 폭력을 나온 곳으로 돌려 주었습니다.

사람이 순간의 폭력 앞에 무릎 꿇을지 모르나 폭력은 더 큰 복수의 폭력을 불러옵니다. 폭력은 악순환의 본성이 있나 봅니다. 폭력의 악순환을 폭력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끊어야겠습니다. 박대표님의 쾌유를 빕니다./백남해 신부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