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모] 송봉진 시인 '내 구두 - 일생의 흔적에 부쳐 -'

  • 입력 2022.07.25 16:17
  • 기자명 /정리 한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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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구두
- 일생의 흔적에 부쳐 -


너와 내가 처음 만날 때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 속에서
서로를 비춰보며 미소 지었다

우리가 몸을 섞은 
첫날의 아픔과 혈흔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날 이후, 하늘도 땅도 다 아는 
내 숱한 비밀을 간직하고서도 
너는 매양 침묵했고
안팎으로 깊어진 상처가 고린내를 내풍길 때야
나를 위한 너에게 독한 약물을 처방하였다

흙과 먼지가
걸음걸음마다포로록포로록 일어나
내 바짓부리를 붙잡는가 싶다가도
네가 털썩털썩 주저앉은
든 자리 난 자리마다 흔적들이 뒤따랐다

너는 숙명을 아는 순교자들처럼
내 삶의 무게를 오롯이 감당하며
내가 사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다
상처투성이 몸으로 무참하게 버려져
무덤도 비석도 없이 사라져 갔다

나, 언젠간 너를 남겨두고
아무런 흔적도 남김 없는 너처럼
홀로 떠나가야 할 때가 오리라는 걸 안다

 

 

 ◆ 시작노트
 흔히 '발이 편해야 온몸이 편하다'는 말로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듯합니다만, 구세주처럼 가장 밑바닥에서 온몸의 체중을 전부 감당해야만 하는 일생입니다.
 가시밭길, 오물이 질척이는 길, 축하와 환대를 받는 자리, 언제 어디든 동행하며 영욕을 함께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압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무참히 버려질 때조차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우리는 이 같은 존재들에게 대한 귀함과 소중함을 잊을 때가 많고 함부로 대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가족, 사회의 일원, 한 국가의 국민, 하나의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 그의 존재와 수고와 헌신적인 삶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하고 고귀합니다. 

 ◆ 송봉진 시인 약력
 - 시사모 동인회 특별회원,한국디카시인모임 동인
 - 장애인활동지원사(작은자리돌봄센터)
 - 예수로교회 목사
 - 백석대.신학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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