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논단] 슬픔이 아니라 단풍색으로 곱게 물든 가을을 국민은 기대한다

  • 입력 2022.11.03 11:31
  • 수정 2022.11.03 17:33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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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이현수 논설위원.
▲ 본지 이현수 논설위원.

 가을바람을 타고 쓸쓸히 떨어지는 은행잎을 바라보고 있다. 수류운공(水流雲空)이라 했던가?

 강물 흘러가고 구름 흩어지듯 과거는 흔적 없고 낙엽처럼 허무만 쌓여가는 계절이다. 절제 없이 쏟아지던 지난 여름, 땡볕이 물러가고 화선지에 그려진 듯 낙엽 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커피향처럼 달콤해 보이는 11월의 어느 오후를 맞는다.

 북한은 한미 훈련에 반발해 사상 첫 NLL 이남으로 탄도 미사일을 발사해 실질적 영토 침해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지난 주말 일어난 이태원 참사를 두고 외신은 연일 피할 수 있는 일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후진국에서나 일어날법한 안전문제에 대한 비판 수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 한국을 평가하는 외국인들의 눈에 자칫 대한민국은 안전하지 않은 나라로 낙인찍히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마저 가중되고 있어 심히 걱정스러운 시국이다.  

 항간에는 토끼머리띠를 한 남자가 밀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CCTV를 헤집는다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을 보면 필시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합리적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것은 비단 필자뿐이겠는가. 

 주체가 없는 행사였다는 핑계로 책임을 무마하려는 태도 또한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는 생각에 심한 불쾌감마저 드는 것은 왜일까?

 임보 교수의 시에서 보듯 이 땅에 절은 그렇게 많은데 부처님은 왜 모른 척하셨는지. 이 나라에 교회는 또 그렇게 넘치는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그냥 두셨는지, 아니 권능의 무당님들께서는 뭘 하고 계셨기에 금쪽보다 귀한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그렇게 쉽게 앗아가게 하셨는지, 정부를 비롯한 서울시 그리고 행자부와 이 나라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청은 무엇이 그리 두려워서 ‘내 탓이오’를 말하지 못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봐도 참사인데 사고라 우기고, 누가 봐도 희생자인데 사망자라 우기면 책임에서 멀어지는 대안의 적절한 단어라도 찾았다는 것일까?

 빛 좋은 가을에 단풍과 낙엽의 차이를 국어 수준에서 국민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아니기를 바라본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책임이 분명 있다. 총리의 말과 행안부 장관의 말, 더불어 경찰청장의 말에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를 그들만 모른다면 이 또한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외국인 희생자만 26명으로 14개국의 국가가 이태원 참사에서 목숨을 잃었다. 세계는 여전히 한국의 가을에 이목이 집중돼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단풍을 품은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운 가을의 대변자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가을하늘은 늘 기품 있어 보이는 여인의 맑은 웃음소리처럼 청명했다.

 오늘의 하늘도 어김없이 한적한 산사를 걷는 비구승의 뒷모습처럼 파랗게 물감 드리워져 있는 기개가 느껴졌다.

 하지만 2022년의 대한민국 가을은 하늘만 청명하고 국민들의 마음은 우중충 그 이상이다. 

 더 이상 책임에서 회피하는 지도층의 모습은 보고 싶지가 않음이 분명해진 계절이다. 해마다 맞는 십일월, 단풍으로 물던 세상을 환호하며 바라보던 국민들의 가슴에도 파란하늘 못지않은 푸른 꿈이 익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덧 짧은 가을 해가 석양을 마중했다. 어둠은 도둑고양이처럼 스며들어 거대한 태양의 빛을 삼켜버리듯 삽시간에 골목골목으로 밤이슬을 채우려한다.

 국가의 존재는 무엇이며 정치인의 존재는 누굴 위해 있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놓아보며 우리는 또 내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시절, 오열하는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날선 유리조각처럼 가슴으로 날아드는 가을을 다시 청명한 기운으로 돌려놓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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