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칼럼] 설과 가래떡과 내 솥단지

  • 입력 2023.01.16 17:14
  • 수정 2023.01.16 19:26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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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1월 1일 정월 초하루를 설이라고 하는데 일 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라는 깊은 뜻을 새기는 명절이라는 설(說)에 공감한다.

 설날이 되기 2~3일 전부터 가래떡을 만들기 위해 방안 윗목에 둔 큰 대야 속에는 멥쌀이 물에 잠겨서 싸르락싸르락 소리를 내며 몸을 불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차례 음식을 준비하시느라 분주하셨고, 할머니는 복을 맞이하는데 혹시나 놓친 것이나 소홀한 것이 없는지 챙기시느라 바쁘셨고, 우리는 토끼처럼 오물거리며 뭔가 더 기뻐질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냥 부풀어 있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섣달그믐날 푸른 잉크 같은 밤하늘에는 싸락눈과 같은 별이 촘촘히 떠 있었고, 그 별들이 점점 빛을 죽이고 가다가 대보름달이 하늘 가득 비출 때까지 보름 동안이 설 연휴였다.

 입춘이 오고 봄이 열리기까지 농부들은 휴식을 하면서 때를 기다렸고, 설에 즐겨 먹던 음식이 떡국이었다.

 설 명절 음식에 대한 풍속은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중 부모님이 평안도나 함경도에서 월남하신 분들은 남쪽에 고향을 둔 분들과 다른 음식 문화를 얘기한다.

 특히, 설에 만드는 만두의 경우, 북쪽 지방에서는 주로 꿩고기를 사용하고, 꿩 뼈를 우려서 육수를 만들며 설날 차례에도 떡국 대신 만둣국을 사용한다고 한다.

 가래떡은 흰색이라 백의민족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가 있고, 길이가 길어 ‘무병장수’를 뜻한다는 얘기도 있다.

 썰면 모양이 엽전과 같이 생겼다 해서 새해 첫날 떡국을 먹으면 마음을 맑게 할 뿐만 아니라 재물을 많이 모을 수 있다고도 한다.

 기계로 뽑는 요즘의 가래떡만큼은 아니겠지만 등잔불도 끈 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능숙하게 동전 모양으로 떡을 써는 한석봉 어머니의 얘기는 유명하다.

 그런데 가래떡을 왜 동전처럼 잘게 썰었을까? 그건 나누기 쉽도록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었을까?

 ‘등 따습고 배부른 게 최고’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은 배가 불러서 다이어트를 하느라 땀 흘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떡국 한 그릇이면 감지덕지라며 허기가 져서 배를 채우려고 땀 흘리는 사람이 있다.

 떡국으로 한 살이라도 더 먹었으면 내 배가 다 차도록 애를 쓸 것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게 베풀기도 해야겠다.

 배가 덜 고픈 한 사람이 배고픈 한 사람씩을 맡기만 한다면 세상이 더 따스해지고 나눔으로 인한 행복이 더 커질 것이다.

 만두든 떡국이든 국물이 있어야 하고 집집마다 김이 나는 솥단지 정도는 걸어놓고 사는 세상이다.

 집 밖으로 나가면 두세 군데에 모양이 다른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각자의 떡국이 맛있다고 편가르기 하느라 바쁘다.

 남의 것을 마구 먹었으니 그 배가 성하겠냐고 주장하는 무리와 내 것만 먹었다는 무리에 대한 언론 보도도 이제 지루하다.

 거대한 보아뱀도 스트레스 받으면 먹은 것을 다 뱉는데, 배 속은 언제나 정직하게 반응하고 시간이 지나면 사필귀정이 될 것이며, 작은 쌀알을 갈아서 더 크게 만든 것이 가래떡이고 솥단지의 합은 분명 가마솥보다는 많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쌓인 눈을 뽀드득 밟으며 담장 길을 돌아 대문을 두들길 설날 친지들의 방문도 기다려진다.

 이 좋은 잔치를 기해 이제는 좀 만나고 살자.

 ‘잘 살고 오래 사는 비결은 반을 먹고, 두 배로 걷고, 세 배로 웃고, 한없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속담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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