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마당]청첩을 삼갑시다

  • 입력 2006.05.31 00:00
  • 기자명 유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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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정중히 청하는 행위를 청첩(?牒)이라 하는데, 청첩장 받고 가봐야 정중한 대접은 커녕 손해만 보고 오는 일이 다반사니 결혼 풍속도가 예삿일이 아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으니 작금의 청첩장은 관청에서 세금이나 벌금 부과할 때 사용하는 고지서가 된 지 오래다. 민폐가 분명한데도 오래된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어 더 문제다. 쌍춘철이란 게 들어 있어선지 올핸 유난히도 청첩장이 많이도 날아든다. 견디다 못해 웬만하면 가근방에서 하는 것 아니면 못본 체 하기로 작심해 보지만 그것도 두부 자르듯 명쾌하게 정리가 안된다.

조기 퇴직해 소위 백수로 살아가는 모씨는 “백수도 웬만하면 살아가겠는데 이놈의 청첩장 땜에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그래도 좀 폼나게 시골로 돌아가 전원생활까지 하고 있는 전직 대기업 임원도 “제일 많이 깨지는 게 고지서”라며 ‘전원생활의 최대 적’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조간경남의 모논설위원도 “지난달에 걸쳐 8건이나 터져 쎄가 빠지게 쓴 한달 고료를 몽땅 다 털렸다”며 허탈해 하고 있다.

이제 청첩장은 ‘공공(公共)의 적’이 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쉬어야 할 주말에 남들을 불러내는 후안무치한 행동도 삼가야 할 때다. 식장이라도 찾아가면 주차난에 진땀나고 혼주한테 눈도장 찍고 웅성거리다 보면 주례는 혼자서 뭐라고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도 없다. 경상도식으로, 더 정확히 마산 가근방식으로 답례 봉투 속에 만원짜리 한 장 넣어 보내는 게 차라리 더 낫다. 먹고 가라고 식권까지 넣은 집엔 줄 서서 양식배급 받듯이 뷔페음식 먹고온 날도 대접 잘 받았다는 느낌은 도통 없다. 부유층이나 서울쪽에선 주로 호텔 같은 데서 하는데 식대만 한명당 5만원정도 든다니 부조라고 해봐야 별 도움도 안된다. 밥값만도 몇천만원이 들었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다. ‘몇천만원’이면 서민들에겐, 첫출발하는 신혼부부에겐 방 두칸짜리에 필적한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이런 결혼 풍속도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물론 경사스러운 날 가까운 이웃들이나 지인들이 찾아와 축하해 주는 풍속은 우리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 풍속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만큼 허례허식에 가득찬 결혼 풍속도는 찾기 힘들 것이다. 외국 영화만 봐도 결혼식 장면은 수도 없이 나온다. 누가 우리처럼 이렇게 부모 중심의 결혼식을 올리던가? 사랑하는 사람 둘이 뜻이 합치되면 목사나 신부 찾아서, 또는 증인 한명 데리고 관청에 가 신고만 해도 결혼식은 성립된다. 더 크게 해 봤자 양가 가족들이랑 신혼부부가 초청한 사람들만이 그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던가. 이건 도대체 ‘도떼기’ 시장도 아니고, 파워 플레이 하는 것도 아니고, 눈도장 찍기 경연대회장도 아니고 소위 ‘신성한 결혼식’하곤, 도통 아니올시다다.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듯 1시간 간격으로, 또는 30분 간격으로 신혼부부들을 만들어내다 보니 이혼율 또한 세계 1위로 올라선 건 아닌지 예사롭지가 않다.

이제 혼사를 치를 부모들부터 각성을 해야 할 때다. 위치나 체면 같은 것 생각하지 말고 과연 결혼식을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 건지 반성해야 한다. 본전 생각이 나기도 할 것이다. 그 대신 음식 대접이며 호화결혼식의 거품을 빼면 그게 그걸 수도 있을 것이다.

양가 직계가족과 자녀들이 초청한 우인대표들이랑 어디 교회당이나 야외나 농장 같은 데서 그네들이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손잡아 주면 뭐가 그리 흠이 되겠는가. 그리고 청첩장 대신 이런 알림장 하나 보내면 어떻겠는가.

“꽃 피고 새 우는 좋은 계절을 맞아 저희 영식(애)을 가까운 친척들과 애들 친구들 몇몇이 축하해 주는 가운데 조용히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청첩하지 못한 것을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 합니다.”

한석우/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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