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언행일치’라 …

  • 입력 2006.06.08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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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다고 하기도 그렇고… 어처구니 없다고 하기도 그렇고… 왜 웃어야 하는지, 언제 웃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딸이라고 주장하는(?) 개그맨이 나와서 이상한 몸짓을 보이며 무어라고 지껄여대는데 도저히 뭘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어서 엄마라고 우겨대는(?) 남자 개그맨이 나오고, 잠시 후 아버지라 보이고 싶어하는 개그맨이 나왔습니다. ‘언행일치’! 모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 중 한 코너 입니다. 처음엔 도저히 무엇인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서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도 났습니다. 그러다가 슬며시 오기 같은 것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오냐! 다음 주에도 기필코 보고야 말리라! 한 번, 두 번, 아∼ 탄성이 절로 나오며 형광등이 깜박거리다 켜지듯이, 돌 머리가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젠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 웃어야 할지, 왜 웃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언행일치’라는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말과 행동, 의식이 완전 불일치합니다. 그냥 한번 웃자고 하는 이야기인 것도 같지만 가만히 듣고 보고 있노라면 한 편의 부조리극 또는 블랙 코미디를 보는 느낌입니다.

어릴 적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방송 프로하면 ‘웃으면 복이와요’였습니다. ‘수사반장’을 마친 후 이어지는 ‘웃으면 복이와요’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그 시간만 기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유머, 코미디는 단순했습니다. 줄거리가 있고 코미디언들이 좌충우돌 몸을 던져가며 만들어내는 웃음이었습니다. 그 후, 코미디는 계속 진화하여 개그로 바뀌었고, 언제나 시대보다 앞서 시대를 만들던 개그가 어느덧 ‘언행일치’라는 이상야릇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묘한 웃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 ‘일본 코미디는 저질이지만 우습고, 우리 코미디는 수준이 있지만 우습지 않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놈들은 웃기 위해 코미디를 보지만 한국 사람들은 웃지 않으려고 코미디를 본다’는 이야기도 기억납니다. 20년 전만 해도 웃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습다면 그저 ‘같잖은 것들이 설치는 같잖은 꼴’이 우스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사 냉소적이었습니다. 누군가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 그래 니가 얼마나 잘 났는지 한번 떠들어봐라”하기 일쑤였고, 텔레비전 코미디를 보아도 “그래, 니가 얼마나 잘 웃기는지 한번 웃겨봐라”였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웃고 참 많이 밝아졌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세상이 그만큼 투명해졌으며 냉소적이기보다(아직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삶을 사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조그마한 기쁨에도 얼굴이 환해지고, 작은 일에서도 감동을 받으며, 자원봉사나 남을 돕는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아직 어두운 구석이 남아 있습니다. 폐쇄적이며 냉소를 조장하는 집단을 봅니다. 기초의원을 당 공천하여 특정 정당이 몽땅 싹쓸이 하는 모습은 마치 ‘언행일치’라는 코미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당선 감사 현수막에 새겨진 글과 얼굴들이 야릇하게 다가오며 웃음을 만들어 내는데, 언제 웃어야 할지, 아니 정작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게 만듭니다. 왜 우리 동네, 우리 지역, 우리 시·군의 살림살이를 돌보고 감시하는데 중앙당의 개입이 필요합니까? 그 동네에서 나고 자라 잔뼈가 굵어져 형님, 아우, 아재 부르며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아는, 시민단체가 1등 의원으로 선정하였고, 누가 보아도 참 일 잘한다 하는 분들이 일 할 기회를 잡지 못하게 하고, 중앙당에 풀뿌리 민주주의까지 줄 세우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없어져야 합니다. 적어도 특정 정당에 대한 편애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라도 말입니다.

백남해/신부.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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