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론]지식을 사고파는 사회

  • 입력 2006.06.09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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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는 연세 지긋하신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자네 왜 가방을 들고 다녀?”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내 나이쯤에 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보기에 어색해 보여서일 것이다. 물론 가볍게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자문해 보았다. ‘글쎄 왜 내가 가방을 들고 다닐까! 습관이 돼서?’

우리는 학교만 졸업하면 가방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버스 안이나 약속시간, 여가시간에 간단한 읽을거리를 찾지 못하고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도 참으로 뜨겁다. 공부가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공부할 기회를 놓친 부모들의 심정이 자식에게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자녀들의 가방이 요즘에는 너무 가벼워 걱정이다.

오늘날의 사회를 산업사회를 넘어 지식정보화사회라고 말한다. 그런 사회를 살면서 직장인들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어색해 보이고, 학생들의 책가방이 가볍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과연 지식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는 지를 반문해 봐야 한다. 교육열은 높은데 학교만 졸업하면 책과 담을 쌓는 사람들이 너무나 흔하고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거나 무겁게 느껴지는 사회가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는 사회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사회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은 이미 학문을 위한 상아탑이 아니라 취업준비의 장(場)으로 변한 지 오래다. 대학교 학사학위 졸업논문은 적당한 내용과 형식으로 쓰여지고 적당히 심사함으로써 이미 논문으로서 가치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학점에 반영되지 않는다거나 취업공부가 더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베끼기나 짜깁기, 심지어 논문을 돈으로 팔고 사는 대행도 행해지고 있다. 일부학생들의 커닝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사회진출의 문턱에선 학생의 기본적인 양심과 지식은 오로지 결과만을 위해서 헐값에 사고팔린 것이다.

올해 3월 12일 국가청렴위원회는 ‘박사학위과정 비리소지 제거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 교육부에 권고한 바 있다. 청렴위 조사결과 박사학위 취득 과정에서 허위 출석처리, 실험대행 및 논문대필, 부실 논문심사 등 부조리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금품이 오고 간다니 지식을 돈으로 사고판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전북지역 대학교의 의사와 교수사이의 석·박사 학위 돈거래 사건에서 보이듯 심지어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학위가 돈으로 매매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 사건으로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약 7개월 동안 대학비리 일제 단속을 벌였고 87명을 사법처리하고 30명을 구속기소하였다. 교수 채용비리나 허위 출석처리, 실험 및 논문대행, 공금횡령, 연구비횡령 등 비리의 형태는 실로 다양했다. 더욱이 이 같은 부정과 비리를 인식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범죄행위를 하는 지식층의 도덕성에서 더 충격적이다.

가장 엄격해야 할 학문의 세계에서 금전으로 지식이 사고팔리는 부조리는 건전한 사회의 근간을 부정하는 매우 악질적인 범죄행위다. 왜냐하면 정직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문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박사학위조차 돈으로 매매될 정도의 사회라면 그 사회의 정직성은 이미 사라졌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사회는 개개인의 정직에서부터 출발한다. 정직하지 못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부정과 부패의 사회가 된다. 학문을 하는 지성인들조차 자신의 지식을 편법으로 활용하고 금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면 그 누구에게 정직을 강조하고 법을 잘 지키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 우리사회의 모습에서 우리는 지식정보화사회를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 반문을 해본다. 지식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을 수도 있고 가치관으로 형성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나 자료로 남겨둔다. 이제 그 책과 자료를 가방에 넣어서 가끔씩 필요할 때 참고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사회를 살아간다면 결코 지식을 사고파는 가치관을 형성하지도 않을 것이다. 건강하고 미래가 밝은 사회는 건전한 가치관의 형성에서 시작된다. 건전한 가치관은 지식을 소중히 여기고 항상 가까이 접할 때 비로소 형성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이동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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