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마당]노송(老松) 위의 학(鶴)

  • 입력 2006.06.14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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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 말고는 동식물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문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퍼뜨리고 있어 문제가 된다. 틀리게 알고 있는 것 중 대표적인 게 억새와 갈대다.

6·25전부터 크게 유행했던 노래에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라는 것이 있다. 이미 흘러간 노래지만 그 가사에 나오는 ‘으악새’로 인해 혼동을 빚는데 ‘으악새’는 새가 아니고 ‘억새’이며 가수가 장음(長音)으로 멋지게 뽑으면서 졸지에 ‘으악 으악’하고 우는 으악새로 돌변, 와전되고 만 것이다.

이제 웬만큼 새가 아니고 풀이름으로 자릴 잡았는가 싶었더니 억새와 갈대도 헷갈리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창녕 화왕산정에서 매년 가을에 거행되고 있는 ‘갈대제’라는 것도 실제 억새를 갈대로 우기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모양이야 조금 비슷하지만 억새가 건조한 산야에서 자생하는데 반해 갈대는 개펄이나 물가에서 자라나는 식물로 화왕산 꼭대기에서 갈대가 피어날 리가 만무한 것이다.

“벗꽃 향기 그윽한 계절에…”

젊잖고 고매한 한 단체에서 보내온 초대장의 서문이다. ‘벚꽃’을 ‘벗꽃’으로, 또 향기라고는 없는 벚꽃을 ‘향기 그윽한’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봄의 압권이라 할 벚꽃은 화사하기 이를 데 없지만 실제로 향기라곤 거의 없는 꽃이다. 그냥 눈이 취해서 향기 그윽하게 느낄 지는 몰라도 벚꽃단지 아래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 보면 아무런 향기가 없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벚꽃 주변엔 눈을 씻어도 벌을 찾아보기 힘들다.

봄꽃 중엔 이렇게 방향(芳香)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극히 미향인 꽃들이 예상 외로 많다. 우선 봄의 대명사격인 진달래며 개나리마저 향기가 나지 않으며 제주도의 봄을 상징하는 유채꽃도 향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흔히 피는 철쭉이며 동백꽃도, 튤립이며 히야신스 같은 화훼류도, 과수원의 복숭아꽃도 향기라곤 거의 없다.

봄향의 대명사는 차라리 매화며 천리향이며 목련화 정도로 오히려 향기없는 꽃이 더 많은데 화훼류로선 프리지어, 수선화 따위가 향이 짙다.

대부분 붓꽃과 난초의 구별도 잘 못하고 있는데 이 경우 화투가 오도시킨 주범이 된다.

화투에서 소위 ‘다섯 끗’을 나타내는 붓꽃그림을 보곤 ‘6월 난초’라고 부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는데, 화투의 원고향 일본에서도 ‘붓꽃’이라는 ‘아야메’로 불리고 있는데 현해탄을 건너면서 그만 난초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런 식물명의 오도는 문학작품 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발견된다. 일찍이 미승우(米昇右)씨가 지적한 대로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소위 ‘노란 동백꽃들’도 사실 동백나무가 아닌 개동백으로 불리기도 하는 생강나무다. 노란색의 동백꽃은 있지도 않을 뿐더러 향기도 없는 동백꽃 속에 쓰러지면서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고만 정신이 아찔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식물의 사투리 이름을 작품 속에 넣어 오도시킨 예는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속에 나오는 구절 “맨드래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에서 ‘맨드래미’도 마찬가지. 알다시피 맨드라미는 한여름에 피는 꽃인데 이 경우 정작 민들레를 그 지역 사투리인 ‘맨드래미’로 표기해 오도시킨 사례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동양화에서 자주 묘사되는 ‘노송(老松) 위의 학(鶴)’ 그림이야말로 천년동안 지적도 받지 않고 횡행하는 자연에의 무지다. 원래 두루미목(目) 두루미과(科)에 속하는 학이란 놈은 나뭇가지에 내려앉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둥지도 갈대밭이나 풀숲에다 튼다. 조금 닮은 백로나 왜가리가 나뭇가지에 둥지를 트는 걸 보고 착각한 것이다. 장수를 상징하는 흑백무늬의 학은 두루미 종류라 전혀 나뭇가지에 내려앉지 못하는 데도 무지한 동양화 속에서는 지금도 사뿐사뿐 잘도 내려앉고 있다. 자연에 대한 무지가 이럴진대 세상에 대한 무지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한석우/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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