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신명의 마당놀이는 계속돼야 한다

  • 입력 2006.06.15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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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토고와 월드컵 본선 첫경기는 극적인 후반 역전승으로 끝났다.

밝고 기쁜 일보다 걱정스럽고 우울한 일이 더 많은 요즘, 대토고 역전드라마는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청량제였고 맺힌 것을 풀고 대립하는 것을 모아주는 해원상생(解寃相生)의 한판 굿을 만들어냈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흔히, 월드컵을 세계인의 축제라고들 하는데 별 생각없이 쓰고 있는 축제라는 말은 서구 그리스 로마의 인본주의적 헬레니즘과 이스라엘의 신본주의 헤브라이즘에 뿌리를 둔, 놀이 의미인 축(祝)과 제사 의미인 제(祭)가 결합된 것으로 우리민족 고유(固有)축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민속학자들은 우리민족 놀이문화의 특징중 하나가 노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어우러진 ‘마당’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든다. 노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분리된 ‘무대’와는 다르다. 자발성과 기존질서에 대한 야유와 풍자가 깔려있는 신명나는 놀이이자 굿이던 마당놀이. 2002년 월드컵 때 세계인을 감탄하게 했고 어제 다시 재현되었던 거리응원전은 우리민족의 잠재 에너지가 분출한 엄청나게 큰 마당놀이였다.

붉은악마라는 구심점이 있긴 했지만 4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전국에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와 응원을 한 것은 한국 사람이니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던 짓도 멍석 펴놓으면 안하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관이나 기업에서 조직적으로 동원하려 했다면 그 많은 인원이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민속학자 주강현씨는 4년 전의 월드컵 거리응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신명이다. 우리 문화의 원형질인 신명이 분출되고 있다. ‘신난다’, ‘신기’, ‘신바람’ 등은 곧바로 신명의 또 다른 표현. 이번의 신바람은 ‘붉은 바람’으로 갈아입고 한반도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예전에 붉게 물들인다고 썼다면 끝내 재판정까지 갔으리라!). 한국인의 마음 언저리에는 굿적인 그 무언가가 깔려 있다. 굿은 맺힘을 풀어내는 풀이이며 굿판은 해방의 구체적 발현처다. 그리하여 대동굿판에서는 사회적 응어리, 생리적·심리적 옹이 등이 발산된다. …… 거리응원은 한국민의 역사문화적 전통이 일구어낸 거리굿이다. …… 그동안 거리굿도 난장판도 모두 통제당하였다. 축제도 ‘그렇고 그런’ 상업적, 혹은 관제축제만이 주류였다. 심지어는 색깔조차 통제당하여 미술품조차 붉은색은 금기된 사회 아닌가. 축구팀도 연줄, 인맥이 중시되고 눈치보기와 줄서기, 선후배 구분짓기 따위가 만연됐다. 그 금기가 깨지자마자 거리굿이 비로소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 부산에서 대구로, 대전으로, 그리고 광주로 내려가는 신명의 폭발적인 붉은 해일이 요동치고 있다. 해외 동포의 눈물겨운 성원까지 포함한다면 한민족공동체는 저마다 신명에 감염되어 분명히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길 간구하는 것이다. 통일한국의 저력도 이 같은 신바람 없이 어찌 가능하겠는가.”(2002.6.19. 한국일보)

편가르기나 표계산에 몰두하는 정치인들도, 상업주의에 집착하는 기업도 녹여 버릴 수 있는 용광로 같은 거대한 굿판을 건방지게 벌여보자.

기왕 놀 바엔 건방지게 놀아보자. 맘껏 고함 지르며 쌓였던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 버리자. 풀어야 할 갈등이 있는 사람과 함께 응원하면서 뜨겁게 보듬어도 보자. 응원이 끝나도 응원을 통해 하나 되었던 그 감격을 잊지 말자.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여러 모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것을 풀어내기 위한 에너지로 승화시켜 내자. ‘대~한민국’은 계속되어야 한다.

남두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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