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세속적인, 한없이 세속적인

  • 입력 2006.06.22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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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것은 어떤 편향됨이나 부족함도 없이 하나의 공처럼 다 원만하고 빈틈이 없는 독립체로 완전해지려고 한다. 우리 인간은 어떤가. 조금은 돈도 있어야 하겠고, 정신적으로도 안정이 되어야 하겠고, 남에게 피해보지 않을 정도의 권력도 있으면 한다. 이쯤 되면 건강도 필수적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 궁합이 맞는 부부 생활도, 잘 나가는 자식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두고 싶다. 언제 어떻게 둥근 공처럼 어느 한쪽도 일그러지거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이룰 수 있을까. 채우면 채울수록 이것저것 주워섬겨야 할 것이 더 많아진다. 욕망은 끝없이 이어지고, 공은 원만함이 아니라 팽창시켜 키우고 싶은 풍선이 된다. ‘뻥’ 터지기 직전까지 채우고 싶은 풍선이 된다.

늘 부족하다고 여기는 대상은 끝없이 욕망을 낳게 하고 나를 부추겨 그것에 목을 매달게 한다. 내게는 없는 것, 그것이 채워지기를.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케 하려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우리는 가지기 어려운, 아무리 해도 갈증을 다 채울 수 없는, 우리가 가질 수 없는 불가능한 대상을 금기시하고 눈을 돌린다. 프로이트는 안락한, 이제는 우리가 추방되어 버려서 영원히 되돌아 갈 수 없는 낙원을 성적 욕망의 끝으로 말하지만, 우리의 더 가까운, 세속의 뿌리 깊은 욕망은 부와 권력이다. 부와 권력, 그것은 우리의 피 속에 유전되어 온, 뼈에 사무치는 욕망이다. 그래서 황금을 돌같이 보라고, 그래서 언감생심 남의 것을 탐하기는커녕 생각도 말라고, 우리는 부와 권력의 욕망을 억누르고 눙치고 틀어막아 가난을, 힘없는 삶을 ‘유구한 전통’처럼 대를 이어 물려받아 산다.

그대가 좌측통행을 했음에도 한쪽 눈에 붕대를 한 교통순경이 보행위반으로 그대를 억울하게 닭장차에 집어넣었을 때, 그대가 뒤로 찍힌 속도위반 차의 벌금으로 경찰서를 찾았을 때, 그대가 이유 없는 폭력을 당하고 억울함으로 하소할 길이 없어 밤잠을 설쳤을 때, 소용에 닿지 않는 분쟁에 휩싸여 있을 때―. 최소한 진정성을 버리지 않았던 그 많은 순간들마다 교통순경을, 경찰서장을, 법관을 자식으로, 친척으로, 친구로, 아니면 사돈팔촌이라도, 친구의 친구로도 두어두기를 얼마나 욕망했던가. 세리(稅吏)의 이기와 부당한 징세 법규와 법조문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그대가 걸머지고 갚아야 할 세금으로 우울하게 내일을 살아야 할 때, 그대는 얼마나 세무서원을, 세무서장을 얼마나 가족으로 두어두고 싶어 했던가. 그대가 세속의 법과 부로 자신을 바닥에 내버리고 하소연하던 일들이 실로 그대의 핏줄 속에, 뼈 속 깊이에 대대로 유전되어 오던 서러운 가난과 힘없는 권력 때문이었음을 알지 않았는가.

우리는 얼마나 세속적인가. 우리는 내게 없는 권력을 위하여, 채워도 부족한 부를 위하여, 대통령이 되고 싶고, 재벌 총수가 되고 싶고, 대통령과 사돈팔촌이 되고 싶고, 재벌 총수와 먼먼 인척이 되고 싶은가. 우리들 세속의 욕망은, 때 없이 찾아드는 병마로 황망히 찾아간 병원에서, 그대는 흰 가운을 걸친 수간호원 한 사람을 얼마나 부러워하였던가. 그것은 얼마나 세속적인 욕망인가. 자식을 낳아 의사를 만들고, 경찰을 만들고, 법관을 만들고 세무서장을 만들어 우리의 병마를, 가난을, 힘없음을 더 이상 유전케 하지 않으리라. 우리는 세속의 삶을 따라 실속이 있다며, 내 아이를 의과대학에, 경찰대학에 보내고, 세무대학에 보내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가난의 묵은 쇠고리를 벗겨내고 무소부지의 칼을 휘둘러도 보고 싶다.

미덕으로 몸에 배게 익히면서 살아온 검소함과 법 없이 사는 일들이 더 이상 자랑할 일도 부끄러워할 일도 아님을 알면서도 한없이 세속화해가는 삶을 바라본다. 세상에는 우리를 얽어매는 부조리함이 더욱 나를 때 묻게 한다. 낡은 사진첩을 보면서 켜켜이 덧칠해진 울적한 나의 초상을 본다. 세속적인 세상보다 더 세속화되는 나의 초상을 본다. 아무래도 원초적 본능에 뿌리깊이 박힌 서러운 가난 때문에, 없는 권력 때문에 나/우리는 ‘바람보다 더 빨리 눕’기도 하는가보다.

명형대/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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