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론]‘대∼한민국’

  • 입력 2006.06.23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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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들의 함성이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거리응원전을 틈타 성추행범이 기승을 부리고 있단다.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소재가 될 법도 한데, 여전히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범죄의 영역으로 인식되기보다 가십거리 쯤으로 회자된다.

법이 엄연한 범죄로 사문화해 놓긴 했으나 성추행이나 희롱의 범주가 상당수 남성들에게는 남성 주류질서에 대한 소수여성들의 반란쯤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성추행 또는 성희롱을 뜻하는 ‘섹슈얼 허래스먼트’(sexual harassment)란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74년 미국 코넬대학에서라고 한다. 한 남성 연구자가 도서관 여직원을 상당 기간 성적으로 괴롭혔는데 몸을 만지고 쳐다보며 자위 흉내를 내기도 했단다. 이 여성은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둔 뒤 실직에 따른 지원을 신청했는데, 실업보험위원회와 주 정부는 개인적인 다른 퇴직 사유도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어쨌거나 이 사건은 성추행이란 말을 대중화하는 데 큰 몫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를 범죄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처벌법)을 발효한 1994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도 관련 내용이 여러 법률에 분산돼 있었으나 실효성이 적었다.

짧은 역사 탓인지, 사회적 인식 탓인지 ‘성추행’이라거나 ‘성희롱’이라는 주제를 두고 대화를 하면 대부분 남성과 여성의 의견은 명확히 이분화되는데, 남성들은 암묵적으로 용인되어온 기득권을 포기 당하는 억울함을 은근히 비꼬아 성토한다. 반면 여성들은 한번쯤은 경험했음직한

‘바바리맨’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공연장에서 겪었을 지도 모르는 성추행이나 음란한 눈빛 등이 여성의 성적 감수성에 가해지는 불쾌감, 수치심의 기억으로 한목소리를 내게 된다. ‘바바리맨’은 다수에게 수치감, 혐오감을 주는 공연음란죄에 해당되어 형법 245조의 조항이 적용되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적용된다.

그러나 서울대 우 조교 사건에서 최근 국회의원의 추행파문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들은 추행을 당하고도 성에 대해 이중적인 사회의 편견 앞에 다시 피해자가 되는 억울한 경우를 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가해자들은 ‘술’이나 ‘분위기’를 탓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피해자유발론으로 여성에게 그 책임의 일부를 전가하기도 한다.

남성들과 여성들의 견해가 일치되지 않아도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분명히 성폭력의 일종이며 상대가 원하지 않는 성적 행위는 모두 폭력이 될 수 있다.

최근 거리응원전에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덜미가 잡힌 추행범이 조사과정에서 “딸이 알면 안된다”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하는데 딸이 ‘알아서는 안되는 일’을 생면부지의 여성을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추행범 개인의 인격문제로만 여겨 버리기에는 무엇인가 개운치 않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나의 어머니와 아내와 딸, 그리고 그 외의 여성으로 나누어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그 이유다.

나의 아내와 딸이 겪어서 안되는 일은 우리사회의 모든 여성들이 겪어서는 안된다.

성장하는 경제수준이나 문화의식의 수준 만큼 우리사회 남성들의 전반적인 성의식 수준과 양식의 성장을 기대한다.

최근 성추행 사건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한 중진 의원의 경우는 우리 사회 힘있는 사람들의 성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다. 당사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더 부각시켜 성추행에 대한 국민 인식을 심화시키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경제만이 아니라 성에 대한 양식도 압축성장을 시킬 때다.

이인순/경남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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