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갑 칼럼] “내 그럴 줄 알았다”

  • 입력 2006.04.17 00:00
  • 기자명 하종갑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잘 나가던 한나라당이 심상찮다. 공천을 댓가로 돈을 받은 중진 의원이 된서리를 맞으면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여당의 원내대표는 ”국민들이 경악할 비리를 곧 밝히겠다”고 호언하고 있어 40여일 남겨두고 있는 5·31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입을 상처는 예사롭지 않다.
이래 저래 만나는 사람마다 공천후유증을 걱정하면서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오죽했으면 여당이 주장하는 ‘지금의 공천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을까. 그 이전부터 ‘돈 공천’이 의심된다는 말들이 무성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다. 소문이긴 하지만 일부 공천자의 자격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돈많은 사람들만 공천을 받았다는 소문이나 기초의원 얼마, 광역의원은 또 얼마, 자치단체장은 얼마의 돈을 내야 한다는 소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내년 대선을 위한 자금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그럴 듯한 소문은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참 어이없는 일이다.

바보가 따로 없다. 심한 말로 ‘축구 등신’이다. 돈을 주고 공천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되먹지 못한 사람들이 공천에 떨어 졌을 때 그냥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은 결과에 대해 물고 늘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부인이 받은 것이어서 본인은 잘 알지 못했다는 해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남편 몰래 그 많은 금품을 받을 수 있는 간 큰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당연히 남편에게 전후 사정을 알렸을 터이고 덩달아 일의 성사를 부탁도 했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상식이다. 옛날부터 ‘베갯머리 송사’를 경계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10분의 1만 깨달았더라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런 지혜를 몰랐을 수 없다. 그런 일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런 바보가 없다. 알면서도 그랬다면 더욱 바보다. 그리고 그런 바보같은 사람에게 나랏일 맡겼다면 국민 모두가 바보 아닌가. 국민을 바보로 만든 바보는 당연히 정치판에서 떠나야 한다.

한나라당에서 ‘돈 공천’비리에 얽힌 사람이 몇 명이 더 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미 경남지방에서도 그런 문제로 이미 정한 공천자를 바꾸는 일이 벌어졌고 얼마나 더 많은 공천 후유증이 드러날지 아무도 모른다.
경남은 한나라당의 텃밭이다. 그때문에 경남도민들이 받는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지역 국회원의 입김이 워낙 세다 보니 경선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진주시장의 경우 아직까지 후보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중앙당에서 결판 하도록 미뤘다. 2명의 국회의원의 이견(異見)때문이다. 누가 공천을 받던 엄청난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

그런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당연히 공천권을 가진 사람들 몫이다. 경남은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곧 당선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 낸 자만심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은 당을 뒤엎을 각오로 곪은 상처를 도려내는 것이 마땅하다. 옛말에도 이런 게 있다. ‘부스럼 놔 둔다고 살 안된다’는 속담. 유치한 표현이긴 하지만 지금 한나라당에서는 새겨 둘 말이다. 특정지역을 독식할 것이라는 자만심이 불러온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두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이 이런 자만심 아니었던가.

한나라당은 이제 자신을 뒤돌아 보고 자신을 추스리는 일에 당의 힘을 모을 때다. 지방선거에서 대패할 각오로 공천파동을 해결하는 것이 살 길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경남 도민들조차 한나라당에 등을 돌릴지 모른다.
아직 늦지 않았다.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고 보자는 생각이라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민들은 그렇게 만만하고 어리석지 않다. 진정으로 속죄하고 다시 창당(創黨)한다는 비장한 각오만이 한나라당을 살리는 길이다. 더 이상 ‘바보 정당’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