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갑칼럼]정치, 한국축구 본받아라

  • 입력 2006.06.26 00:00
  • 기자명 하종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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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말 즐거웠다. 독일 월드컵은 축제의 도가니였다. 밤을 잊어가며 열광하고 환호하며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꿈을 다시 한번 이루자는 열망은 온 국민을 한 마음으로 묶었고 선수들은 기대에 보답하듯 정말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어느 방송의 자막에 ‘축구는 오늘 죽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국민적 공감을 얻을 만큼 심판의 편파적인 판정 탓에 아쉽게 16강의 꿈은 좌절됐다. 분통 터지는 일이다. 국민들은 두 사람만 모이면 심판을 성토했다. 있을 수 없는 판정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낸 심판들을 직접 심판하지 못하는 울분을 소주잔으로 삭여야 했다.

우리 선수들 정말 열심히 뛰었고 후회없이 싸웠다. 비록 16강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태극전사들의 투혼은 한국 축구사(蹴球史)에 큰 그루터기를 남겼다. 지고도 이렇게 환호를 받은 일은 그리 흔치 않다. 최선을 다했기에 온 국민이 갈채를 보내고 있다. 외신들도 “한국선수들 정말 잘 싸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며 늘 비꼬던 중국 언론조차 “아시아의 존엄을 잃지 않았다”고 했을 정도이니 그 성과는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선수들은 어제 오후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4년후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슴에 안고 ‘개선’했다. 참으로 장하다. 기가 죽거나 풀이 꺾여서도 안된다. 당신들은 승리자들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깨달았다. 축구선수들처럼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데 온 몸을 바친다면 갈채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정치가 이들의 100분의 1만 했더라도 이렇게 나라가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지금 우리정치 현주소는 어떤까. 참여정부는 자신들의 패거리를 위해서는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무디기 그지없다. 열린우리당이 재·보궐선거에서 연패를 하고도 뉘우칠 줄 모르고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한 이후에도 정부 여당은 국민들이 자신들을 몰라준다고 서운해 하고 있다. 국민들의 냉엄한 심판은 월드컵의 스위스전처럼 편파적인 오심이 아닌데도 말이다.

엉터리심판에도 페어플레이정신으로 승복하는데 정확한 국민심판을 거부하는 정부 여당의 행태는 ‘선수자질’이 의심스럽다는 여론까지 이끌어 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반목하고 참여정부의 심복이었던 인사까지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지만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왜 많은 돈을 들여 외국인감독을 영입해 왔을까. 한국인감독은 학연, 지연, 종교연을 앞세워 선수선발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였지 않은가. 그런 인연을 끊고 오직 능력위주로 선수를 선발한 결과 한·일 월드컵에서 기적 같은 4강을 달성했고 독일 월드컵에서도 원정경기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위정자들이 축구판을 읽어야 한다. 영호남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편가르기를 일삼는 것은 나라를 위기로 몰아 넣었던 조선시대 당파정치와 다를 바 없다.

이제 참여 정부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1년정도의 레임덕현상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참여정부 지지도는 말이 아니다. 지금 상태로 총선을 실시한다면 원 구성도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판이다. 이런 난국의 수습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결단만 남아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라지만 결코 짧지도 않다. 전반전에 졌다가 후반 막판에 역전승을 하는 게 축구다. 그게 더 짜릿하고 그런 재미로 축구를 즐긴다는 말도 있다. 이미 토고전과 프랑스전에서 경험한 바 있듯이. 축구를 본받아라. 남은 임기를 정말 최선을 다해 국정을 이끌어 나간다면,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국정에 최선을 다한다면 지금까지의 실정(失政)을 만회할 수 있다. 지고도 환호받는 한국축구를 읽어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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