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산책]체온이 있는 풍경

  • 입력 2006.06.27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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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의 일입니다.

황토팩을 한 여인이 곁에 있는 머드팩을 한 여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등 밀어드릴게요.”

“아뇨… 괜찮아요, 저기… 제가 밀어 드릴까요?”

“아뇨, 저는 밀었구요… 손 닿지 않는 데라도 좀 밀어 드릴게요.”

황토와 갯벌이 마주보며 씨익 웃자 가지런한 이빨이 더 희게 보입니다.

마치 인종이 다른 황인종과 흑인종이 보디랭귀지로 마음을 나누는 듯 합니다. 그까짓 등 밀어준다는 말에 웬 호들갑이냐구요?

아니, 요즘 세상에 그게 어디 흔한 풍경인가요. 때밀이기계가 욕탕을 점령한 후부터 등 밀어준다는 말이 쉽게 들리던가요. 더군다나 때밀이아주머니가 상주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등 밀어주는데 아마 오천원 정도는 할 걸요.

이쪽에서 황토얼굴과 갯벌얼굴이 서로 미소를 나누고 있는 동안 반대편 때밀이기계는 여전히 돌고 있습니다.

아랫배가 처진 여인이 이리저리 춤추듯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때를 밀고 있습니다. 기계가 사람을 부리는지 사람이 기계를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기계는 벽에 붙어서서 이태리타올을 감은 채 빙빙 돌고 여인은 어깨, 허리, 겨드랑이까지 몸을 올렸다 내렸다 왼쪽 오른쪽 이리저리 꼬아대니 누가 누구를, 무엇이 무엇을 부리는 것인지 혼돈스럽습니다.

컴퓨터 앞에 붙박이처럼 앉아 게임을 즐기는 것이 기계가 사람을 다루는 겐지 사람이 기계를 다루는 겐지 헷갈리듯 말입니다.

때밀이아주머니는 검정브래지어와 팬티차림으로 여전히 퉁퉁 부은 얼굴입니다.

“오늘은 하나도 없네.” 푸념처럼 내뱉는 때밀이아주머니의 말입니다. 아마 때밀이를 부탁한 손님이 없었나 봅니다.

‘하나라니?’ 저 아주머니에게 있어 손님은 어느새 물건으로 인식되었나 봅니다.

사람이 존엄한 인격체가 아닌 단순한 교환가치로 전락된 것이지요.

요즈음의 목욕탕 나들이는 때를 씻기 위한 목적보다는 건강이나 미용을 위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니던가요. 달목욕이라 하여 한달치 요금을 미리 끊어 골프 치러 가듯 매일매일 정신건강과 육체적 건강을 위해 드나드는 곳이 아닌가요.

숯가마에 앉았다가 쑥탕에 들어가고 지압도 하며 중온, 고온, 저온, 입맛대로 택해서 누리는 별천지가 생긴 게지요.

그곳에서 TV도 보고 책도 보고 오락도 하고 식사도 즐기며 그러다 피곤하면 잠도 잘 수 있는 안락한 쉼터가 생긴 게지요.

찜질방문화라는 말도 이런 흐름 속에서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요즘에는 길거리응원 대신 거기서 오순도순 모여 월드컵응원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군요.

바깥에는 여전히 단절과 소외의 삭막함에 회색가슴으로 메말라가고, 기계화된 얼굴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똑같은 유니폼으로 땀 흘리며 웰빙을 즐깁니다. 친목계를 이곳에서 하는 경우도 허다하지요.

동네 목욕탕엔 때밀이기계가 생겨서 사람들을 기계로 길들이고 있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기계에 길들여지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기계처럼 딱딱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오랜만에 두 여인이 서로 등을 밀어주겠다며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말랑말랑해진 마음을 보았습니다.

마치 하늘나리꽃의 황금빛과 아이리스의 보랏빛이 살랑살랑 얼굴을 부비듯 체온이 느껴지는 풍경입니다.

역시 사람은 사람과 어우러져 있을 때 가장 아름답군요.

저 두 꽃송이 위로 나비가 날아 올 듯 합니다.

강정이/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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