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우리 ‘탯말’을 살립시다

  • 입력 2006.06.29 00:00
  • 기자명 강종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래, 태극전사들 욕봤다’ 비록 본선 진출엔 실패했지만 전국민적 공감대와 투혼을 불러 일으켰기에 아직도 그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필자에게 미리 쓸 기회가 왔더라면 아마 ‘태극전사들 제발 단디 해라’고 시작했을 것이다.

경상도 버전 중에서 압권이 ‘단디 해라’와 ‘욕봤제?’지 싶다.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쓰는 일상용어로 아이를 서울로, 외국으로 유학을 보낼 때도, 군대엘 보낼 때도, 어디 취직이 돼 나갈 때도 으레껏 당부하는 용어가 ‘단디 해라’다. ‘단단히 해라’에서 비롯된 용어겠지만 대인관계도 잘 하고 일처리도 야무지게 잘하라는 내용이 함축된 용어로 만사 ‘단디 해라’ 만큼 더 좋은 당부의 말은 없는 것이다.

‘욕봤다’, ‘욕봤제?’ 또한 경상도 말 중에서 가장 찬사적 용어를 가장 반어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희한한 멘트다. 타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진짜 욕같이 들리는 이 지방 상용어 ‘욕봤다’는 ‘수고했다’, ‘장하다’, ‘축하한다’ 등이 함축된 아주 기분좋은 용어로 전라도의 ‘거시기’에 해당할 만큼 다용도 용어인 것이다.

작금, TV에서도 영화에서도 각 지방 사투리들이 뜨고 있다. 숫제 ‘사투리’라는 용어부터 문제가 많다며 ‘탯말’이라는 용어를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어학자, 문인들의 모임인 ‘탯말 두레’모임은 지난 4월 전라도 사투리의 정수를 담은 ‘전라도 우리 탯말’을 낸 데 이어 올해 말엔 ‘경상도 우리 탯말’을 출간할 예정이라 한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1988년 제정된 현 ‘표준어 규정’에 정의하고 있는 대로라면 표준어를 쓰지 않는 사람, 즉 사투리를 입에 담고 사는 사람들은 졸지에 ‘교양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강단의 존경스런 선생님도, 목사님도, 신부님도 사투리를 쓰면 ‘교양이 없다니’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규정이 아닐 수 없다. 국립국어원은 6월초 내부 토론회를 시작으로 문광부 국어심의회 협의, 국어학계 지식인, 문인 등의 의견을 묻는 공청회를 거쳐 9월 국어발전기본계획(5년 중기계획)을 마련한다고 한다. 이때 ‘사투리도 여러 지역에서 의미파악이 가능하고 두루 쓰이는 말들은 표준어에 적극 편입 확장할 계획’이라지만 경상도 탯말로 ‘택도 없는 소리’다.

뱃속에서부터 듣고 자라 쓰고 있는 우리말은 그대로 쓰면 탯말표준어가 되는 것이다. 그 실태를 옮겨 보자.

“요새 코빼기도 안 뷔던데, 오데 갔다 왔나?” “쪼매이 바빳다. 그래 사업은 우떤노?” “아이구 요새 짜다라 잘 되는기 있나. 초다듬엔(처음엔) 쪼께이 낫더마는 중간에 꼬장지기는(훼방놓는) 놈이 생기는 바람에 말짱 황이다.” “사무실은 참 칼컬크로 해 놨네.”

부동산 사무실에서 만난 두 친구의 대화 내용을 옮겨 적어 봤는데 타지역 사람들이야 이해가 잘 안 될지 몰라도 경상도 ‘문디이’들은 되려 살갑게 느낄 상 싶다. 시장통엘 가면 한결 더 싱싱한 경상도 표준어(?)를 들을 수 있다.

“아지매 이거 한 봉다리만 주소. 울맨교?” “아따 한 옹큼만 더 주소.” “퍼떡 주소.” “이거 다 팔아봐야 한그메(겨우) 집에 갈 차비뿌이 안 남소.” “아따 한 삐까리(많은 수) 앉았네.” “진짜로 천지삐까리네.” “가악중에(갑자기) 와서 이라몬 우짜요?” “가악중이라니, 내가 운제부터 이야기했소. 내가 백지로(부러) 이라는 것도 아이고.” “야이 자석아 니는 쎄기(빨리) 밥 처묵고 패네키(빨리) 핵교 안 가나.”

이렇게 사투리가 천지 삐까린데 억지로 표준말에 넣어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있겠는가. 차라리 지방 방송국에서조차 ‘아구아지매’ 버전으로 뉴스도 한번씩 해 보고 현장에서 기자들은 아예 우리 탯말 그대로 멘트하면 더 살갑지 않겠는가.

“산호동 사거리, 도로공사로 댕기는데 디기 상그럽심더 조심하입쇼.”

한석우/편집위원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