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네트워크 속의 인간 존재

  • 입력 2006.07.20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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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지만 궁극적으로는 고독한 존재이며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 혼자이기 때문에 여럿이 더불어 살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오히려 더 큰 소외와 고독한 존재로서 다른 모든 것들과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얽혀 있는가를 보여주는 재미난 시가 있다.

“살펴보면 나는 /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 나의 아들의 아버지이고 / 나의 형의 동생이고 / 나의 동생의 형이고 / -중략- / 그렇다면 나는 / 아들이고 / 아버지고 / 동생이고 / -후략-”(김광규)

이렇듯 내가 형, 남편, 오빠, 조카, 아저씨, 제자, 선생, 납세자, 예비군, 친구, 적, 환자, 손님, 주인, 가장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얽혀 있어서 진정한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질문하는 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존재가 얽혀 있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얽혀 있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아리 속에, 공동체에 소속되면서 서로가 함께 되기를 소망한다. 언어를 사용하고 우리를 얽어 놓는 제도와 규범이 지배하는, 지배할 수밖에 없는 속으로 기꺼이 머리를 들이민다. 그래서 언어는 힘을 가지게 되고 권력을 가지게 된다. 언어는 넓은 의미의 기호이다. 언어적 질서의 세계에 들어간다함은 유아기에 아이가 인간 사회에 더불어 살기 위하여 아버지의 법(규범, 상징화된 언어)을 지킬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어가 어떻게 사람들을 함께하게 할까. 이렇게 보자. 진해 천자봉의 봉화대에서 창원 천주산 봉화대에다 불을 덮었다 열었다 두 번, 세 번 연깃불 신호(언어=기호 sign)를 보냄으로써 그 표시(기호 sign)는 최소한의 소통을 가능케 한다. 즉 천자봉의 사람과 천주산의 사람을 결속시킨다. 언어, 기호(sign)는 사람들을 관계 맺게 하면서 개개인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루게 한다.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상징화된 언어, 규약화된 기호체계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교통신호의 빨간불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공동체의 언어적 규약을 지키기를 원하였음에도 이를 벗어나기를 원한다.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언어적 질서, 언어 체계를 욕망하면서도, 그 순간부터 그 언어의 힘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욕망한다.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어떤 모순이 있을까. 법이 없다는 말은 오히려 법을 잘 지킨다는 의미가 아닌가. 법, 언어적 규범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다. 밤에 자동차 전조등의 황색 빛깔은 길을 밝게 비춰주는 눈의 구실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함께 살기 위한 언어적 규약이다. 광도(光度)를 높이고 파리한 빛깔로 혼자만 밝은 빛을 내는 이는 유아기 때부터 자기조절을 잘 못해온 정신적 장애가 남은 탓이거나 더 이상 함께 살기를 단념한 사람이라 볼 수밖에 없다. 태양을 보라. 지나치게 밝은 빛은 오히려 눈을 멀게 하여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 규범을 어긴다는 것은 언어가 가지는 소통의 기능을 무시하는 것이며, 언어를 무시한다함은, 그것이 싫어도 지켜야만 하는 ‘존재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유아기에 머물러 있음을 말한다.

사람은 근원적으로 모순된 존재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더욱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남기를 원한다. 섬에 홀로된 로빈슨 크루소가 앵무새를 상대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말, 언어, 언어가 가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욕망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모든 것들로 분열되어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만이 존재할 수 있다.

명형대/경남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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