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론]여름비

  • 입력 2006.07.21 00:00
  • 기자명 강종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라 안팎에서 ‘여름비’의 위세가 매섭다. 팔레스타인의 대지를 피와 분노로 물들이고 있다는 작전명 ‘여름비’의 위력은 체감할 수 없으나 참혹한 것이고, 온 나라를 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여름비는 체감함으로써 더욱 참혹한 것이다.

TV 화면 속으로 생생하게 전달되어 오는 피해현장의 거친 물살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피해현장 사진을 보는 것으로도 멀미가 날 지경인데, 토사와 물에 휩쓸린 집더미와 폐허가 된 농경지를 보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피해현장의 주민들의 고통은 ‘간뇌도지(肝腦塗地)’라는 말이 적격일 듯하다.

정부는 태풍 에위니아와 호우로 극심한 피해를 본 5개 시도의 18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피해의 조기수습과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였고, 해마다 겪는 물난리에 대한 ‘인재ㆍ천재’의 논쟁도 되풀이되고 있고, 전문가그룹의 해법들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고도의 건축기술로 방파제를 축조하고 건축법령을 강화하고 성능 좋은 기상위성을 발사하는 것으로는 매년 규모가 커지고 있는 물난리에 대응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인간이 내세우는 어떤 과학 기술도 실상은 대자연의 무서운 파괴력 앞에서는 크게 소용에 닿지 않는다는 것과 해마다 성격을 달리하는 재해의 성격에 대해 정확한 예측이란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년 재확인하고 있고, 제시되고 있는 재해 예방에 대한 해법들의 현실적인 한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연 앞에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체념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해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의 재해가 발생하리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여러 방편이 강구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지금은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다행히 국가적인 대규모의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발휘되는 성숙한 국민성이 이번 재난 앞에도 예외는 아닐 터여서 이미 각 방송사들은 모금활동에 들어갔고, 발 빠른 봉사자들의 손길은 피해 현장의 상흔을 달래고 있다.

2003년 추석연휴 우리지방을 강타한 태풍 매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보았을 때 참혹한 피해현장에서 고통을 씻어준 명약은 다름아닌 전국에서 쇄도한 온정이었고 또한, 자원봉사자들의 구슬진 땀방울은 이재민 구호는 물론 복구 작업도 원활히 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겠으나, 지난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도시가 물바다가 되었던 미국의 뉴올리언스의 경우 물난리에 이웃을 돕기는 커녕 약탈 등의 치안부재 사태까지 겹쳐진 통제 불능의 상황이 발생했고, 뉴욕시는 두 시간의 정전으로 약탈과 방화, 살인 등으로 아비규환의 장으로 변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새삼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우리네 인심이란 것이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지 좋은 대비가 되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주위를 돌아보는 마음이 재해와 재난의 피해를 풀어갈 해법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재난 앞에 더욱 빛을 발하는 성숙한 국민성을 보여주자.

이인순/마산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