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마당]자유여 안녕

  • 입력 2006.07.26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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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프랑스의 여류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1992년에 이어 몇차례의 마약복용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나는 내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세인의 관심을 받았다. 아마 그녀의 이같은 변론은 현대 프랑스 문학의 대표적인 여류작가이기에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말하기 전에 ‘자신을 파괴할 자유’조차 허용하는 사회는 오늘날 아마 없을 것이다. 자살의 시도나 자해행위, 무위도식 등이 범죄나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서 오늘날의 보편적 가치는 자신을 파괴할 자유가 없는 것 같다. 파괴할 권리와 자유는 차치(且置)하고 우리가 향유할 권리와 자유조차 많지 않음도 느낀다. 또한 그 권리와 자유를 얼마쯤 남용하고 있음도 종종 경험하게 된다. 권리가 타인에게 행하거나 요구하는 것이라면 자유는 타인에게 구속되지 않는 자신에 관한 것이다. 물론 권리와 자유는 법과 양심의 범위 안에서 허용되는 것이며, 서로 보완적이면서도 상반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때때로 권리는 권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불과 20년전만 하여도 개인의 자유가 상당히 제한되었다. 자유의 갈망은 지식층이 더 목말라 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원하는 자유는 그때의 자유와는 분명 다른 성질이다. 하나의 자유를 얻었으니 또 하나를 달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과 같은 자유를 누렸던 시간이 짧아서일까. 우리는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착각하면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히 성숙된 사회일수록 자유는 더 제한적인데 반해 권리의 요구나 행사는 점점 더 강해진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주거지를 나서는 순간부터 자유가 상실된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가정에서조차 점점 자유가 줄어듦을 느낀다.

담배의 경우, 담배를 피울 자유도 있는데 반해 담배연기를 마시지 않을 권리도 있다. 특히 요즘 우리나라가 더 엄격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파리나 로마 등 서구의 대도시를 가면 식당이나 카페, 심지어 지하철 등 대중들이 모여있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담배연기가 코를 찌른다. 건강에 관한 한 선진국 국민들이 더 민감한 데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별 말이 없다. 우리와는 거꾸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담배를 피는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는 셈이다. 이처럼 자유와 권리는 획일적인 것이 아니며 시대나 국가, 문화와 환경, 이데올로기 등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아우성이다. 우리나라 지방선거의 경우도 평균 55%내외의 낮은 투표율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특별한 어떤 나라처럼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에게 벌금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간간이 나오고 있다. 참으로 씁쓸할 뿐이다. 개인에게 강제성을 부여하여 투표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정치가 국민들에게 믿음을 준다면 투표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인간이 자신이 만든 틀에 구속되어 타의에 의하여 행위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불행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마산갑 국회의원 재선거일이다. 두 번에 걸친 재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과 날씨 탓도 있겠지만, 투표율이 역대 어느 선거때보다 낮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행위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며,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하는 최고의 정치적 행위이자 권리이다. 그래서 투표행위는 ‘나’를 대신하도록 대리인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유권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대리인 모두가 형편없다고 판단된다면 그래도 투표를 해야 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우리에게 투표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면 역으로 투표를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투표율의 하락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저항이라는 무언의 표시이다. 사강의 말이 오늘날 우리의 정치문화에 ‘나는 투표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라는 말처럼 들린다면 너무 비약적인가.

이동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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