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산책]거창국제연극제의 비전

  • 입력 2006.08.01 00:00
  • 기자명 이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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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국제연극제 개막식에서 내빈 소개는 독특했다. 국회의원과 도지사와 군수 등의 인물을 소개하는 것은 여느 행사장과 다름없었다. 독특하게 느껴졌다는 부분은 개막식장의 사회자가 내빈들을 소개하면서 거창 유림대표와 신권(愼權) 종중의 문중 대표를 소개하는 장면이었다. 사회자로부터 소개를 받자 모시옷을 입고 나타난 유림대표와 문중대표는 나란히 관객 앞에서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 보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신권은 조선중종 때 거창 위천천의 수승대에 은거하면서 구연서당을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했던 인물이다. 그의 호는 요수(樂水)다. ‘요수’는 물을 좋아한다는 뜻이므로 남덕유산에서 흘러내린 위천천의 물을 그가 좋아했던 것 같다.

수승대라는 이름도 원래는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했던 것을 퇴계 이황의 권유로 요수 신권이 대(臺)의 면에다 ‘수승대(搜勝臺)’라 새김으로써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수승대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의 유적이 있는데 이를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이 공동 관리하고 있다.

거창국제연극제측은 이들로부터 장소를 빌려 연극축제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막식에 유림과 신씨 문중대표를 불러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명승지 중에 고찰은 승려들에 의해 대부분 관리가 되고 보존이 되고 있지만, 서원은 서원문화의 상실과 함께 인적이 끊기어 폐가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십수년 전에 외국인들을 데리고 우리나라의 유명인물과 그들이 기거했던 집을 소개한답시고 산청의 남명 조식이 강학했던 덕천서원, 전라도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 그리고 만해 한용운이 기거했던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집들이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 있어 그 형색의 초라함에 무척 민망하고 창피함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물론 지금은 많은 것이 복구되고 단장되었겠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빈집이 된 문화재를 가꾸고만 있을 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박제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거창 수승대는 달랐다. 수승대는 자연과 인간과 인간의 세월이 연극으로 한데 모여 한 여름밤의 열기를 태우고 있었다. 거창인구가 6만5000명 가량인데 축제기간 중 수승대에 몰리는 인파를 2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거창이 대단한 축제로 성공한 고장이 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수승대와 구연서원과 관수루와 요수정 그리고 뜰앞의 은행나무는 한밤중인데도 서치라이트의 조명을 환하게 받고 있었다. 고색창연한 옛 흙담과 옛집들이 거기 모인 사람들의 알록달록한 옷차림과 왁자지껄한 소음,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밴드소리 속에 되살아나고 있었다.

연극제가 박제속에 갇혀진 집들과 그 집 속에 있었던 당시의 영화를 건져올려 우리와 함께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가장 낡은 것이 가장 새로운 것과 통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연극제의 성공요인은 옛 시대의 서원과 새 시대의 연극무대를 통시적으로 함께 꿰어냈다는 점이고, 또 공시적 입장에서 보자면 휴가철에 휴가지를 연극장소로 택한 시간적·공간적 감각이 적중했다는 점이다. 수승대와 연극의 조화는 피서철의 절정기에 산고수장(山高水長)한 계곡물에서 피서하는 피서객들이 낮에는 피서하고 밤에는 연극을 본다는 것, 휴가지의 긴 밤을 메워야 하는 무료함을 연극으로 채울 수가 있어서 피서객들에게는 한낮의 피서에다, 밤의 피서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사실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공연예술이 서울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창지역을 중심으로 공연예술의 대중화와 관광자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지난해 전국공연예술분야 평가결과 최우수사업으로 선정이 됐다. 거창이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찾는 연극명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야외극장이 갖고 있는 장점도 많지만 야외이기 때문에 생기는 작품의 완성도 문제라든지 혹은 장마철 공연 등의 문제점이 아직 많다. 이러저러한 단점들을 보완한다면 우리 지역에서 생긴 축제가 명실공히 세계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비전이 매우 밝다.

이현도 문화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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