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빚는 일

  • 입력 2006.04.18 00:00
  • 기자명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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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호회 회원이 손수 빚었다는 다기 술잔 몇 개를 사진으로 보았다.

첫 솜씨라는데 이런저런 문양도 넣고 나름대로 투박한 멋이 배어난 그림들을 보니 흙 주물러 그릇 빚고 싶은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하동으로 옮겨앉은 이후, 그릇 빚는 일은 통 돌아볼 여유가 없다.

작년 봄 화개의 어느 도예공방에 들러 수강을 조르다 차 따는 시기나 지나야 수강생 받을 수 있다는 주인장 말씀에 흙 두 덩이만 사들고 왔다.

“집에서라도 조물거려 그 공방 가마에서 구워달라고 또 졸라야지…”
이렇게 꿈만 부풀린 시간이 벌써 1년을 넘긴다. 귀농을 꿈꾸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정호경 신부님의 ‘손수 우리집 짓는 이야기’를 처음 읽고부터 안성의 부모님 농장 한귀퉁이의 사과 창고를 흙집으로 개조해 내 집과 내 방을 꾸미고 싶은 욕심을 키워 왔다. 아예 시골로 들어오는 것 자체를 반대하던 아버지의 만류에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고, 연세도 많고 건강 또한 나빠진 아버지는 오랜 세월 정성으로 돌본 7000여 평의 땅을 떠나 지금은 도시의 아파트로 옮기셨다. 그때만 해도 시골로 완전히 옮기는 것은 자신이 없었으므로 주중의 반만 안성을 넘나들며 아버지 곁에서 이것저것 시골 생활을 익히고 싶었는데….

시골로 들어가는 것부터 고생의 시작임을 몸으로 경험하신 아버지의 뜻이었겠지만 난 아직도 많은 미련을 안은 채 그때 짐 싸들고 아버지 곁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에 속을 끓인다.

충북 증평의 염색 선생님 소개로 오창의 도예 선생님을 만났다. 매주 증평과 오창을 교대로 넘나들며 시간을 나누고 쪼개 바삐 뛰어다녔고, 시골로 가기 전까지는 일하는 짬짬이 진천에 다니며 손맛을 조금 익혔을 뿐 새로 시작한 오창에서의 작업이 실로 흙의 손맛을 느낀 때가 아니었나 싶다. 1년에 서너 번 장작가마에 불을 지피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 장작가마뿐 아니라 가스가마도 수시로 돌리는 선생님 곁에서 더딘 솜씨로 익혀 온 도예의 참맛을 깊이 깨달으려면 아직도 먼 길인데 난 여태 제자리걸음이다. ‘전’과 ‘굽’의 오묘한 흐름, 지금도 손끝에서 그 느낌이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흙을 만지는 일, 흙집을 짓는 일, 흙을 주물러 내가 쓸 그릇을 빚고 내가 입을 옷을 황톳물에 조물거릴 날만 머릿속 한가득 채운 채 앞만 보고 내달린 시간들.

시골살이 3년차에 접어들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아직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채 떠돌지만, ‘평생 질리지 않고 즐길 놀잇감’으로 선택한 ‘도예와 염색’ 두 가지 가운데 염색이라도 즐기며 몰두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자투리천을 조각조각 이어 내 손으로 빚어 구워낸 찻잔, 들꽃이 담긴 화분, 촛대 같은 소품들이 올라앉을 다포를 만들 때면,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희망을 생각한다.

푸른 하늘 아래 흙을 이불 삼아 뜨겁게 달구어져 새롭게 태어날 그릇들, 나의 온전한 터가 생기면 반드시 ‘노천 소성’에 도전하리라는 희망 말이다. / 지시랑공방(www.jisir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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