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갈등을 봉합한다고?

  • 입력 2012.04.03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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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열흘도 남지 않은 도내 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선전쟁의 고지를 쳐다보니 그곳을 향해 먼저 승리의 깃발을 꽂고자 하는 주인공들과 그들의 고지 선점을 돕고자 팔을 걷고 나선 도우미나 선봉장, 책사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온다.

4·11 총선이 용광로의 끓는 쇳물처럼 워낙 뜨겁게 달아오르다 보니 지역의 일꾼이나 적임자를 자처하며 후보들이 주택단지나 도로변에 토해놓은 각종 장밋빛공약들은 거개가 신선도와는 거리가 먼 우선 당선되고 보자 하는 식의 용도폐기 돼야 할 공약(空約)이 대다수라는 게 도내 전 지역에서 들려오는 일반론적인 도민들의 볼멘 여론이다.

그중에서도 파장의 쓰레기처럼 유세장에 가장 흔하게 나뒹구는 개구일성은 갈등을 봉합해 지역민들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구호들인데 총선이 가까워 질수록 봉합은커녕, 이전투구나 아귀다툼처럼 평소 상부상조하던 이웃과 지인들마저 대립하도록 부추기는 충동정치로 변질돼 간다는 소식은 유감이다. 갈등(葛藤)이란 칡넝쿨과 등나무넝쿨이 서로 뒤얽혀 어느 한쪽이 고사하는 흉측한 사실을 나타낸 한자성어다. 충동정치는 결국 등나무 옆에 칡뿌리를 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등나무 넝쿨은 억센 칡넝쿨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토착시키는 대의정치는 토론문화라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신성한 정치경작(政治耕作)이어야 한다. 누구를 다치게 하고, 타도하고, 죽이는 게, 정치가 지닌 본래의 의미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농사치고 가장 어려운 농사는 없으며 그 농사만 잘돼 풍년을 이루면 국가와 사회와 이웃은 저절로 태평성대를 이루는 양질의 선진국으로 발돋움 하게 돼 있다. 대한민국이 명실공이 GNP 쪽에서는 당당한 선진국으로 들어섰지만 정치문화와 도덕성에선 최하위의 후진국이라는 자탄의 공감대는 지역과 중앙의 정치인들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만 그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전 국민이 공동정범이라는 허물을 벗어나기 어렵다.

선거라는 정치문화의 목적성은 희생과 봉사를 앞세워 갈등을 치유해야하는 법인데도 이 나라 낮고 높은 정치현장 어느 곳에서도 희생과 봉사로 임기를 마친 위정자들이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는 불만은 우리 정치의 현실을 적절하게 표현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국회는 물론 광역과 지자체의회까지 당리당략이나 지역 색으로 얽혀 갈등의 싹이 온 국토를 뒤덮고 있다면 칡뿌리 인근에는 어떤 다른 식물과 나무는 공생하기 어렵다는 결론과 다를 바 없다. 온 산에 칡넝쿨만 뻗어 있고 다른 수종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산 자체의 의미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또한 인분이나 썩은 쓰레기더미에는 파리나 구더기만 기생하 듯 정치판에는 그처럼 갈등을 부추겨 초선 때는 제법 신선도가 높은 주인공들마저 저질 정치인으로 타락시키고 마는 선거꾼들로 북적댄다.

그들이 원하는 건 주역들을 존경받는 지도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달성을 위한 도구로 주인공을 당선시키기에 급급하지 갈등을 봉합하는 재주라곤 기초지식조차 전무한 사람들이다. 부하나 아랫사람들에게 휘둘렸던 위정자치고 태평성대를 이루지 못했고 갈등은 더욱 얽혀져 국가와 지역은 도탄에 빠졌다.

눈이 눈을 보지 못하고 등불이 자신의 아래는 비추지 못하듯 저질측근들 때문에 회한을 남긴 정치지도자들은 측근을 탓할 게 아니라 사리판단을 망각하고 승리의 주역이 되기에만 혈안이 됐던 이성 잃은 판단과 저질정치에 부화뇌동했던 자신들의 행동부터 먼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정신 차려라.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늘은 속일 수 없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란 말은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뼈아픈 교훈이기에.

/ 본지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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