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마당]역사 미스터리(Ⅰ)

  • 입력 2006.08.09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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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살인더위고 하니 추리소설 같은 역사 미스터리를 찾아 재구성해 본다.

이순신 장군의 최후가 장렬하다 못해 허망해선지 그의 죽음을 두고 호사가(好事家)들간에 말이 많다. 즉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란 ‘자살설’과 한술 더 떠 전쟁 이후까지도 살아 있었을 것이라는 ‘생존설’까지 제기돼 상당기간 공감대를 형성해 오고 있다. 이 두 가설(假設)은 생뚱맞게도 사학자도 아닌 두 핵물리학 박사들(서울대)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박혜일 교수(자살설)와 남천우 교수(생존설)가 그들이다.

먼저 남교수는 ‘긴 칼 옆에 차고 수루에 혼자 앉아’(수문서관:1992)라는 저서를 통해 ‘생존 가능성’을 제기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듬해(1993년) 박교수는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이순신 장군의 전사와 자살설에 대하여’란 논문을 발표, 장군의 죽음은 스스로 충분히 예감된 것이란 충격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다만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오던
‘장군의 자살설’을 논문식으로 체계적으로 내세우고 있을 뿐, 최초의 제기는 아니다.

장군의 자살설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전사 100년 정도 지난 조선 숙종 때부터로 대표적인 것이 ‘면주(免胄 갑옷을 벗음)의 비화’다. 면주의 비화는 숙종 때 이조·예조·호조판서를 역임한 이민서가 당파싸움으로 망친 역사를 회고하면서 남긴 글에서 나타난다. 즉 ‘당시 송강 정철과 우계 성흔이 모두 당쟁의 화를 입은 시초였으며 의병을 일으킨 김덕령 장군도 무고를 당하여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여러 장수들이 모두 자신의 입장에 회의를 품었고, 또 제 몸을 보전하지 못했던 바, 곽재우는 드디어 군사를 해산시키고 은둔했으며 이순신도 싸움에 임하여 갑옷을 벗고 탄환에 맞아 죽었으니 호남과 영남 사람 모두 의병은 되지 말라고 서로 경계하였다’ 하고 있다.

이민서가 남긴 이 불후의 역사비평은 당시의 정치풍토를 적나라하게 집약, 이순신의 죽음의 선택(즉 자살설)도 하나의 필연적인 사건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숙종 때의 영의정 이여는 이순신의 전몰 114년 이후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公)이 임금(선조)에게서 죽임을 면하고 난 뒤로는 공(功)이 클수록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마침내 싸움에 임하여 자기 몸을 버렸으니 공의 죽음은 본시 작정한 바라고들 한다.’ 이처럼 그의 전사는 그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라는 이른바 ‘의(擬)자살설’을 낳게 되었다. 즉 이 설은 7년 전란의 위태로운 전쟁을 치르면서도 한 번도 패함이 없었던 (23전 23승) 그가 자기 몸을 보전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텐데 마지막 싸움(노량해전)에서 왜 구태여 갑옷까지 벗고(免胄) 선봉에 나섰던가 하는 등의 의문에서 발단된 것이다.

남교수의 경우도 장군이 전사한 현장상황에 직접적인 의문을 두고 있다. 즉 전투가 한창 진행 중에 함대사령관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의 주위에 다른 장수가 아무도 없고 아들과 조카만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의 현장에 맏아들과 조카가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석연치 않은 것은 다른 어떤 해전에서도 이순신이 아들과 조카를 자기 배에 함께 태워 싸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미리 대기시켜 놓았을 개연성이 짙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교수는 장군이 죽은 지 80일 만에 장사지낸 이유라든지, 15년 후 특별한 이유없이 이장한 점 등을 들어 죽었다고 고하고 숨어 살았을 생존 가능성까지 점친다.

마치 추리소설 같은 가설이 아닐 수 없다. 숨어 살았다면 세상을 속여가며 어디서 그렇게 감쪽같이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적의 흉탄에 맞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자살하려고 했을까? 가설이 또 다른 가설을 만들려고 한다.

설령 장군이 되살아나 청문회를 할 기회가 온들 묵묵부답할 사건이 아닌가.

차라리 ‘적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외침을 믿고 싶다.

한석우/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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